[내일은 못볼지도] 오징어 찾아 동해서 서해로, 다음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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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못볼지도] 오징어 찾아 동해서 서해로, 다음은 어디로

연합뉴스 2025-10-18 07:11: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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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수온에 오징어 '한국 패싱'…동해·남해 어획량 급감

대체 어장으로 떠오른 서해…어민 간 경쟁 치열, 남획 우려도

서해산 오징어 손질하는 상인 서해산 오징어 손질하는 상인

[촬영 이주형]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태안=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우리 어릴 적에는 오징어 잡히면 내다 버리기도 했다고. 몇 마리 잡히지도 않았지만 값어치도 없었어."

충남 태안군 신진항에서 만난 50년 조업 경력의 김정길(70)씨는 "전국 오징어 배들이 여기에 다 몰려들 줄 누가 알았겠냐"며 정박된 어선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깊은 수심, 저온의 해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오징어는 김씨의 말처럼 과거에는 서해가 아닌 동해를 대표하는 어종이었다.

특히 울릉도 근해는 오징어가 많이 잡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요즘엔 서해 오징어잡이가 대풍이라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지난 16일 기자가 둘러본 신진도 어촌계 수산물 직판매장 매대에는 제철을 맞은 꽃게와 자연산 대하가 놓여있었지만, 여전히 오징어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징어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던 한 상인은 "8월에 잡아 얼려놓은 걸로 아직 장사할 만큼 올해에는 많이 잡혔다"고 귀띔했다.

태안 신진항에 정박한 어선들 태안 신진항에 정박한 어선들

[촬영 이주형]

◇ 동해·남해선 오징어 어획량 급감…대체 어장으로 떠오른 서해

그렇다면 동해에 살던 오징어가 갑자기 서해로 이동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오징어는 과거부터 동해, 남해, 서해 가릴 것 없이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서식했다.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는 가을·겨울철에 동중국해·규슈 인근 해역에서 산란하고, 부화한 새끼(유생)는 구로시오 해류(난류)를 따라 우리나라 연안으로 올라와 성장한다.

산란철이 되면 태어난 곳으로 다시 이동하는데, 어획할 수 있는 성체가 되는 6월부터 11월까지가 우리나라에서는 오징어 철이다.

서해의 오징어 풍년 현상은 최근 10여년간 주요 서식지였던 동해와 남해 어획량이 급감한 탓에 서해가 대체 어장으로 부각된 영향이 크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근해 살오징어 어획량은 2000년대 최고치를 찍은 뒤 2010년대 중반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2009년 18만9천160t(동해 12만2천417t, 남해 6만3천562t 서해 3천181t)에 달했던 어획량은 꾸준한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지난해에는 1만3천546t(동해 5천241t, 남해 5천452t, 서해 2천853t)이라는 역대 최저 어획량을 기록했다.

15년 사이 서해지역(인천·충남·전북)의 살오징어 어획량 감소는 10.28%에 그쳤지만, 동해지역(강원·경북·울산)에서는 95.72%, 남해지역(부산·경남·전남·제주)은 91.42% 급감할 정도로 어획량이 곤두박질쳤다.

일각에서는 난류가 서해로 유입돼 어장이 형성됐다는 분석과 수온 상승에 따른 먹이사슬 변화로 오징어가 동해에서 서해 등지로 서식지를 옮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서해지역 어획량은 뚜렷한 증가추세 없이 매년 불규칙한 패턴을 보인다.

충남 서산수협 관계자는 "어획량은 어획물을 내린 곳이 기준"이라며 "동해와 남해에서 너무 줄어버리다 보니까 몇 년 사이 서해에서 조업을 많이 하게 됐고 위판도 활발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에 쌓이는 오징어 차에 쌓이는 오징어

[연합뉴스 자료사진]

◇ 수온에 취약한 오징어, 서해에서도 자취 감출지도

오징어 어획량 급감의 가장 큰 이유로는 단연 수온 상승이 꼽힌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바다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8.74℃로 1968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동해 18.84℃, 서해 17.12℃, 남해 20.26℃ 등 모든 해역에서 역대 최고 수온을 기록했다.

실제 우리나라 해역의 표층 수온은 빠르게 상승 중인데 1968∼2024년 57년간 1.58℃ 상승해 지구 평균(0.74℃)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동해가 2.04℃로 가장 많이 올랐고 서해 1.44℃, 남해 1.27℃ 상승했다.

오징어 주 서식지인 연근해 동해 남부 해역의 수심 50m 평균 수온(12∼18℃)과 표층 수온(15∼23℃)이 과거보다 높아지면서 우리 바다에서 성장해야 할 오징어들이 러시아 등 북쪽으로 올라가 버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성장한 오징어가 산란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할 때도 뜨거워진 우리나라 연안에서 먹이활동을 하지 않고 수심 100m 아래로 빠르게 헤엄쳐 가버리는 이른바 '한국 패싱' 현상이 빈번해진다고 지적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근해자원과 윤석진 연구사는 "오징어의 서식 수온은 4∼27도도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장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 이유는 표층수온 상승이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해는 원래부터 오징어의 이상적인 서식환경은 아닌 데다, 중국에 가로막혀 동해처럼 북상하기도 어렵다"며 "수온이 지금처럼 빠르게 상승한다면 서해에서도 자취를 감춰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진항에 걸린 오징어 불법포획 단속 현수막 신진항에 걸린 오징어 불법포획 단속 현수막

[촬영 이주형]

◇ 어획 행태까지 바꿔버린 오징어잡이 경쟁

오징어잡이 배들이 서해로 몰리고 서해안 어민들 역시 조업에 뛰어들면서 어획 행태가 바뀌는 것은 물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가 매년 오징어 불법 포획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어민들 사이에서마저 과도한 경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물론 남획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충남 태안으로 몰려드는 동해안과 남해안 채낚기어선에 꽃게잡이 자망어선들마저 어구만 바꿔 오징어잡이에 나서면서 어선 간 벌어지는 신경전은 일상이 됐다.

그물을 설치한 뒤 한 번에 거둬들이는 자망어법은 어획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한 곳에 지나치게 집중되면 남획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조업했다는 한 어민(66)은 "7∼8월에는 100척도 넘게 몰려들어 항구에 배를 댈 공간이 없을 정도"라며 "바다에서도, 항구에서도 자리 경쟁이 일상이다 보니 어선끼리 방해 공작을 하는가 하면 고성에 욕설까지 오가고 있어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다른 어민은 "바다로 조금만 멀리 나가면 쌍끌이 저인망 중국어선들도 많이 와서 잡아간다"며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잡다 보면 앞으로 오징어 씨가 마르지 않고 배기겠느냐"고 걱정했다.

coo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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