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국내에서 전기와 물이 끊길 위기에 놓인 인구가 기초생활수급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의 대표적 에너지 복지 사업인 ‘에너지바우처’는 여전히 기초생활수급자 중심으로만 설계돼 있어, 실질적인 에너지 취약계층 상당수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한국사회보장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의 단전·단수 위험 인구는 각각 1만7103명, 1만4639명으로 총 3만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단전 위험 인구의 13.7%, 단수 위험 인구의 11.9%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은 국가의 복지 안전망 밖에 있는 셈이다.
‘위험 인구’란 전기·수도요금 체납이나 금융 연체 등 복수의 위기 정보가 포착된 잠재적 위기가구를 의미한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한전과 수도사업소 등에서 단전·단수 정보를 두 달에 한 번씩 받아 AI 예측모형으로 분석하고 취약계층으로 판별되면 지자체에 통보해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회보장정보원 측은 본보에 “위기 징후가 포착된 가구는 현장 확인을 거쳐 복지 서비스나 에너지바우처 신청을 안내하고, 소득이나 재산 기준으로 공적 지원이 어려운 경우에는 민간 자원이나 고용 서비스로 연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바우처, 10년째 ‘기초수급자 중심’...미사용액만 4700억 이상
특히 단전 ·단수 위험 가구는 국내 에너지 취약 계층을 위한 대표적 사업으로 꼽히는 에너지바우처제도에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에너지바우처 제도는 2015년부터 시행돼 에너지 취약계층을 향한 난방·전기·연료비 지원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에 한정돼 있어, 현 시점 단전·단수 위험 인구 3만명 중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약 10%에 그친다. 나머지 90%는 차상위계층이거나 일시적 위기 상황에 놓인 가구로 에너지 지원 제도 대상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원 대상의 제한뿐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이용률도 낮다는 점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이 한국에너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에너지바우처 미사용액은 전체의 32%, 금액으로는 4773억6500만원에 달했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이 미사용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청 과정이 복잡하고 행정복지센터 방문이나 온라인 신청 등 절차적 장벽이 높아 실제 이용률이 낮은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본보에 "에너지바우처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아동 등에 대해서만 바우처를 지급하고 있는데, 에너지 이용이 빈곤 자체뿐만 아니라 주거 형태와도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취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에너지 취약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협소하게 지원하는 경향도 있다"고 짚었다.
강 의원은 “정부가 미사용 문제 해결을 위해 홍보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효과는 의문”이라며 “노인, 장애인 등 에너지 취약계층에 폭염과 한파가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 만큼 정부는 이들을 중심에 두고 정책 설계와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 역시 “국민 생계를 위협하는 복지 사각지대는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맞춤형 긴급복지 연계 및 직권신청 활성화 등 위기 상황에서 즉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에너지 빈곤층’ 국가 통계조차 없어...복지 사각지대 해소해야
이에 전문가들은 기초생활수급제도를 기반으로 한 지원 이상으로, 에너지 취약계층을 향한 족집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를 위해 일각에서는 에너지 취약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를 분리해 정의한 기준으로 ‘에너지 빈곤층’을 제시한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전체 소득의 10% 이상을 생존을 위한 에너지 사용에 소비해야 하는 이들을 말한다.
다만 국가적으로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통계와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구준모 기획실장은 본보에 “기초생활수급자는 약 250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에너지 빈곤층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에너지 취약계층의 경우 요금 납부가 지연돼도 단전·단수가 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뉴욕시 등 해외 도시들은 요금 미납 시에도 즉각적인 단수를 금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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