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한 해 동안의 국정의 성적표이자 정치의 민낯이 속속히 드러나는 무대다. 올해도 곳곳에서 날 선 질의와 격돌의 순간들이 국민의 눈길을 끌었다. 정쟁 속에서도 빛난 질문, 치열한 논쟁 그리고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2025 국감 장면들]에서는 한 주간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 현장에서 포착된 결정적 순간을 소개한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감사가 지난 1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국정감사는 17개 국회 상임위원회가 834개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다음 달 6일까지 이어진다.
국정감사가 개시된 지 닷새가 흐른 17일 현재, 각 상임위원회는 최소 2차례 이상의 감사를 진행하며 정책 질의와 자료 확인에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상임위원회가 국정감사의 본래 취지에 맞게 정책 검증과 문제점 지적에 나서고 있지만 일부 상임위원회에서는 형식적·정쟁적 측면이 부각되는 모습도 관측됐다. 이와 동시에 날카로운 질의, 예상치 못한 발언,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순간 등 국감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다채로운 순간들을 바탕으로 한 주간 국정감사에서 포착된 인상적인 장면과 발언을 모아 국정감사의 다양한 모습을 되짚어본다.
장면 하나. 90분간 ‘입꾹닫’ 조희대 대법원장
지난 13일 진행된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참고인 자격으로 나와 ‘이재명 상고심’을 통한 대선 개입 의혹 관련해 질의를 들었다. 통상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장은 인사말을 하고 자리를 뜨고 법원행정처장이 답변을 해왔는데,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이석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조 대법원장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에 여당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에게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회동설 관련해 질의했지만 조 대법원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국정감사가 정회된 이날 오전 11시 50분께가 돼서야 조 대법원장은 법사위 전체회의실을 떠날 수 있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삼권분립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까지 나서 법사위에 소란 자제를 요청했다. 반면 사법 신뢰에 영향을 줄 만한 의혹이 나왔다면 대법원장의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여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의혹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며 추가 국정감사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면 둘. ‘보수의 잔다르크’ 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이달 1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운영 법안 및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공포됨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 폐지로 면직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이 지난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서 그는 지난 2일 공직선거법·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 수사를 받던 도중 출석 불응을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이틀 뒤 체포적부심이 받아들여져 석방됐다.
이 전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자동으로 면직, 그러니까 해임되고 난 이틀 뒤에, 정확하게 얘기하면 하루 뒤에 수갑까지 채워서 압송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는 범주”라며 “대통령 한 사람한테 밉보이면 이렇게 되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비상식적인 것이 뉴 노멀인 상황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출석 이후 이 전 위원장은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경찰청 등 국정감사에서 여러 번 화두에 오른 것은 물론 차기 대구시장 후보로까지 지목되며 그의 행보가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행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장면 셋. 대법원 현장검증에 “정당한 조치” VS “초유의 폭거”
국회 법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5일 대법원 2차 국정감사에서 “예고한 대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며 현장검증을 시도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발하는 등 큰 소란이 일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폭거”라고 항의하면서 오전 내내 여야 간 공방이 이어졌다.
이는 1심에서 유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이 이를 대선 개입 의혹으로 규정하면서 대법원 현장검증이 진행됐다. 추 위원장은 결국 정오께 감사 중지를 선한 뒤 시간 바로 현장으로 이동하고자 했다.
이에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길을 막아섰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국정감사장을 빠져나와 행정처 직원들의 안내 없이 이동했다. 이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후 천 처장은 6층 처장실에서 추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김용민 의원 등과 1시간 가량 면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현장검증을 강력히 비판하며 국정감사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대법원 현장검증을 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다음날인 지난 16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도 감사원은 뒷전으로 둔 채 대법원 현장검증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장면 넷. 현직 검사가 눈물로 외친 ‘양심 증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일용직 퇴직금 체불 사건을 맡았던 문지석 검사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내부 폭로를 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날 문 검사는 관련 수사 중 상관의 부당한 업무지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담당 검사가 변경되기 전 동료검사와 함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야 마땅한 사건을 보고했는데, 상관이 ‘무혐의니까 힘 빼지 말라’는 취지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추가로 대검찰청 보고용 보고서에 압수수색 결과를 빼라는 압박도 받았다고 폭로했다.
문 검사는 이 같은 지시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대검찰청에 엄희준 당시 부천지청장과 김동희 차장검사에 대한 수사 의뢰를 한 상태다. 오열하던 문 검사는 “위법행위를 한 공무원들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 검사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검찰이 대기업 편에 서서 약자의 생존권을 짓밟은 중대한 범죄로 볼 수 있다. 또 검찰이 정치적 사건뿐 아니라 민생 사건에서도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과연 법무부와 검찰이 수사로 진상을 밝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면 다섯. 천만 유튜버도 놀란 ‘막말 대잔치’ 국감장
지난 16일 국회 과방위의 우주항공청·원자력안전위원회 국정감사가 잇따른 폭언과 고성 속에 비공개로 전환된 뒤 SNS·메신저 등을 통해 ‘지라시 생중계’가 이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과방위 국정감사는 시작 30분 만에 파행을 빚었다.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이 앞서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벌여진 이른바 ‘폭언 문자’와 전화번호 공개를 두고 또 다시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구독자 1250만명 유튜버 쯔양도 국회의원들의 추태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전 회의가 중단된 뒤 오후 2시 다시 시작된 국정감사는 또 20여분 만에 다시 중단됐다. 이날 과방위 국정감사는 항공우주청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종합감사로, 원자력안전 정책과 디지털 인프라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질의가 예정돼 있었으나 다툼이 커지며 사실상 ‘감사 실종’ 사태를 맞았다.
“한주먹 거리”, “넌 내가 이겨” 등 원색적이고도 유치하기까지 한 의원들의 발언에 차라리 비공개로 진행돼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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