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 안팎에서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이하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를 두고 씁쓸한 뒷말이 무성해 주목된다. 임 회장 취임 이후 단행된 인사 및 지배구조 개편 등에 의해 대항마는 물론 후계자조차 등장하기 어려운 '물리적 상황' 때문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국내 금융지주 대부분이 지속가능경영과 리더십 교체로 인한 혼란 방지를 위해 일찌감치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임종룡 이후가 걱정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종룡 연임 유력설의 씁쓸한 뒷맛…전략·영업 분리 조치에 지주경영 경험 '임종룡 유일'
연말 인사시즌이 가까워지면서 금융지주 회장 연임이 금융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중 2곳의 수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둔 수장들 모두 첫 번째 회장직 수행이라는 점에서 큰 이변이 없는 한 연임이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고위 관료' 출신 외부 인사로 취임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예외는 아니다. 낙하산 논란, 전임 회장의 부실대출 사건 등으로 인한 내부통제 실패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M&A를 통한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성과를 크게 인정받는 분위기다. 덕분에 내부통제 실패 이슈마저 조직 수습 능력으로 재포장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임 회장의 연임을 기정사실화하는 시각이 나오게 된 배경을 두고 다른 해석도 있다. 연임을 할 만한 자격 보단 연임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 때문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계열사 CEO에게 부회장을 겸직하게 하고 은행장을 지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등 후계자 육성이 공을 들이는 타 금융지주와 달리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1인 권력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며 "전략·영업 분리 명분의 은행장 지주 이사회 배제, 사외이사 대규모 물갈이 등을 통해 임 회장 외에 경영의 키를 맡길 만한 인물이 생겨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귀띔했다. 이어 "차기 회장 역시 내부에선 임 회장 외엔 마땅한 인물이 없고 설령 외부에서 찾는다 해도 이사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예전부터 4대 금융지주 이사회에는 은행장이나 주요 계열사 CEO가 지주 이사회에 참석해 왔다. 그룹 전체 경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경험을 쌓게 만들어 지속가능경영을 가능케 하고 리더십 교체로 인한 혼란도 방지한다는 취지였다. 우리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지주는 여전히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금융 이사회에는 이승열 하나금융 부회장, 강성묵 하나금융 부회장 겸 하나증권 사장 등이 참여하고 있고 신한금융 이사회에는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참여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B금융 역시 이환주 KB국민은행장이 기타비상무이사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석 중이다.
반면 우리금융은 손태승 전 회장 재임 시절까지만 해도 은행장이 비상임이사(기타상임이사)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석했으나 임 회장과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이원덕 전 행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은행장들이 이사회 구성에서 배제됐다. 정진완 현 우리은행장 역시 지주 이사회 구성에서 빠져 있다. 이는 지주사는 그룹 전체 전략과 방향을 설정하고 자회사는 오롯이 영업에 집중한다는 임 회장의 경영 방침에 기인한 결과로 평가됐다. 임 회장이 우리은행을 비롯한 전략 부서의 규모와 역할을 축소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그동안 임 회장의 이러한 경영 방침을 두고 역할 분담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임 회장의 공백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일부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회추위 멤버 사외이사 7인 중 4인 우리금융 발탁, 임종룡 대학동문…셀프연임 논란 가능성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게 될 사외이사진도 임 회장의 연임에 상당히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 이는 반대로 따지면 임 회장 외에 다른 인물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금융 등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금융 사외이사는 총 7명으로 과점주주 추천 인사 5명과 우리금융 발탁 인사 2명 등이었다. 그러나 기존 과점주주 중 한 곳이던 'IMM PE'가 지분 매각으로 기존 과점주주에 비해 지분율이 크게 낮아지면서 사외이사 구성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올해 초 우리금융은 'IMM PE'의 사외이사 추천권을 회수하고 빈자리에 외부 추천 인사를 채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과점주주 추천 인사는 기존 5명에서 4명으로 줄고 우리금융 발탁 인사가 3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 3월엔 우리금융 이사회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임 회장 취임 후 우리금융이 발탁한 사외이사 2인 외에 나머지 5인의 임기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푸본그룹 추천 인사인 윤인섭 사외이사만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가운데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 모두가 교체됐다.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한 윤 이사는 임 회장과 같은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또한 'IMM PE' 추천 인사가 빠진 자리에도 새 인물이 발탁됐다. 과거 임 회장이 삼성증권 사외이사로 재직할 당시 이사회 의장을 역임 중이던 이영섭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였다. 현재 사외이사 7인 중 3인은 임 회장 취임 후 우리금융이 발탁해 선임된 인사이고,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 중 1명은 임 회장의 대학 동문인 셈이다.
금융소비자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그동안 CEO와 이사회가 임기를 맞춰 검증 절차 없이 CEO가 연임에 성공하고 후계자까지 지목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이사회의 견제 기능 상실과 독립성 약화 등의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며 "사안의 심각성이 날로 더해지자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해당 사안의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멤버이자 회장추천위원회 구성원들인데 과반 이상이 현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은 그동안 꾸준히 문제시 돼 온 '셀프연임' 논란을 자초할 만한 사안이다"며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이사회마저 독립성을 의심 받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된다면 정당하게 연임에 성공해도 계속해서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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