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정부가 ‘산업재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방안은 역대 정부와 비교해서도 강력한 제재와 지원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범국가적 전략으로 산재 사망자 수를 대폭 줄인 ‘싱가포르식 모델’을 따라 처벌과 기업 인센티브 정책을 함께 제시했고, 인구·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한 ‘일본식’ 모델에 맞춰 취약계층 지원 등을 대책에 담았다.
제재와 인센티브 병행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15일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중대 재해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제재와 함께 안전 사각지대에서의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대책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만인율)을 현재 1만 명당 현재 0.39명에서 203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0.29명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한국의 사망사고 만인율은 작년 기준 1만 명당 0.3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만명당 0.29명)보다 많다. 2003년 1.24명이던 것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산재로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강력한 처벌로는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한 법인에 대해 영업이익 5% 이내, 하한액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망사고가 빈발하는 업체는 등록 말소까지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산재 예방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는 확대한다. 안전시설에 대한 통합 투자세액공제 적용 범위를 늘리고 우수기업에는 세무조사 유예, 정부포상 시 가점 등을 부여한다.
이런 제재와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방안은 싱가포르 사례에 해당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벌금 상한액 인상 등 산재 처벌에 채찍을 빼드는 것과 동시에 입찰 가점 등 당근책도 내밀었다. 이에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2004년 4.9명에서 2023년 0.99명으로 대폭 감소한 바 있다. 한편 외국인·특수고용 노동자, 고령자 지원책 등 인구 및 사회구조 변화에 맞춘 예방대책은 일본식 모델이 참조됐다. 일본이 2023년부터 추진 중인 제14차 노동재해방지계획에는 외국인·고령자 특화 지원, 업종·사고유형별 가이드라인 제공 등이 담겼다.
노동계 “미흡한 부분 정부 노력해야”
노동계는 이번 대책에 노동계 요구가 일부 반영됐다면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으니 현장 작동을 위해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고 당부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산재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고무적”이라면서도 “다만 전체 산재 사망의 약 80% 이상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산재 예방대책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주노동자 등 산재 취약 노동자에 대한 예방대책이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구체적으로 50인 미만 사업장으로의 재정지원 확대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범위 확대, 안전보건 공시제 대상 사업장 확대, 영업정지·인허가 취소에 따른 하청노동자의 임금·고용 보호 장치 마련 등을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번 대책이 성공하려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노동자의 예방 활동 참여를 위해 유급 (노조) 활동 시간 등이 보장돼야 하고, 현장 개선 사후확인을 위한 명시적 대책과 사고 사망 외 다양한 산재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영계 “지원 중심 정책 필요”
경영계는 이번 대책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다만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대책은 기업경영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나아가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전방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산재 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처벌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기업의 자율안전 관리체계 정착을 유도하는 다양한 지원 중심의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중소기업계 역시 사업주 책임만 강조한 대책으로는 근본적인 산업재해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산재 예방 여력이 부족한 사업장에 대한 점검 후 즉시 처벌, 경제적 제재, 작업 중지 요건 완화 등 일부 대책의 법제화로 인한 중소기업 현장의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과 제재 등 필요 이상의 엄벌주의적 접근은 기업의 생산량 감소, 납기 지연, 수출 경쟁력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번 대책에서 등록 말소 등 강력한 대책들의 대상이 된 건설업계는 적정 공사비 및 공사 기간 보장 방안 등은 환영하면서도 지원보다 제재 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염려된다는 분위기다. 특히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건설경기 침체가 여전한 상황에서 산업재해 발생에 따른 대규모 과징금까지 부과되면 건설사들이 생존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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