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초강세, 신흥국 자본이탈 가속…한국 외환시장 ‘긴장 수위’ 고조

[연합뉴스]

[직썰 / 임나래 기자]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늦춰지며 글로벌 자금이 다시 ‘달러로 회귀’하고 있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 역시 외환보유액은 견조하지만 단기외채 비중과 기업의 환노출 구조가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다. 달러 강세·유가 상승·긴축 지속이 맞물릴 경우 외환·채권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

◇겉은 견조하지만, 속은 불안…단기외채 구조 ‘경고등’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 총외채 중 단기외채 비율은 22.7%로 전 분기보다 0.9%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대만(18.3%)·인도(21.2%)보다 높은 수준이다.

 

만기가 짧을수록 자금 재조달 부담이 커져 외화유동성 충격에 취약해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단기외채 편중은 급격한 금리·환율 변동기에 리스크를 키운다”며 “만기 분산과 비상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국제금융 충격에 대한 민감도가 선진국의 5배 수준으로, 달러 유출이나 환율 급등이 빠르게 반응하는 구조적 특성을 보인다.

 

◇달러 강세·유가 상승·긴축 지속…‘3중 압박’ 본격화

 

브렌트유가 배럴당 90달러선을 돌파하면서 2차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유가 상승은 무역수지 악화와 경상수지 개선세 둔화로 이어진다.

 

글로벌 긴축이 장기화하면 달러 조달비용이 급등해 기업의 외화 차입비용과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외화유동성 경색이 금융안정 리스크로 직결된다”며 “외환스왑시장 안정화와 통화스왑 라인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미 투자 확대 속 자본유출 압력…정책·시장 ‘투트랙 대응’ 절실

 

한국 정부와 대기업의 대미 투자 규모는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달한다. 장기적으로는 기술 협력 효과가 크지만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달러 유출 압력이 뒤따른다.

 

이에 금융권은 ▲정책금융기관 외화유동성 공급 확대 ▲한·미 통화스왑 유지 ▲시장조성자 제도 개선 등을 ‘복합 방어체계’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완화, 수출입은행 외화대출 한도 확대 등 유동성 완충책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글로벌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회복형 외환안정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제가 아닌 정교한 ‘안정 시스템’으로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90~1400원대를 오르내리며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 하반기로 늦춰질 경우, 달러 강세는 단기 조정 뒤에도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초체력은 견조하지만 단기외채 관리와 중소기업 환리스크 지원, 스왑시장 심화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정교한 예측·조정 기반의 외환정책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달러의 파도는 언제든 되돌아온다. 문제는 대응이 아니라, 그 파도를 얼마나 미리 준비해 두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