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추진 중인 3500억 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펀드 협상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미국이 당초 요구했던 ‘선불(up front) 지급’ 방식에서 한발 물러서고, 한국이 제안한 분할 투자와 원화 조달 방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총리는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진행한 기자단 간담회에서 "전날 주요20개국(G20) 회의에 가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났다"며 "(미국이 한국에게) 3500억달러를 '업프런트'(up front·선불)하라고 했을 때 한국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베선트 장관이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미국이 처음에는 ‘한 번에 내라’고 했지만, 이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며 “협상 과정에서 좋은 신호(굿 사인)가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역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을 통해 한국의 외환 여건을 이해하게 됐다”며 “미국 내부 논의도 긍정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 구 부총리는 “스와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필요한 외환을 조달하는 방법은 스와프 외에도 차입이나 통화공급 확대 등 여러 방안이 있다”며 “협상 결과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협상의 본체는 러트닉 상무장관과 김정관 장관 간 대화이며, 협상 결과에 따라 외환 수요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은행도 “현재 외환시장 여건상 연간 200억~300억 달러 수준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을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거액의 달러가 단기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한 한국은 일부 투자금을 원화로 조달하는 방식도 검토 중이다. 미국이 원화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해 달러를 시장에서 조달하면, 통화 스와프 없이도 투자금 마련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미국은 오는 26일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한미 간 관세 인하와 투자 협상을 함께 묶은 ‘패키지 합의’를 준비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관세율을 15% 수준으로 인하하는 안을 포함한 합의문을 APEC 정상회의 전에 발표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양국의 이견은 해소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향후 10일 안에 구체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윤철 부총리도 “APEC 전까지 협상 틀의 90% 이상을 맞추고, 정상 간 합의를 통해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라며 “협상이 타결되면 환율 안정에도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의 외환시장 구조와 재정 여건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면서 협상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며 “이번 협상이 성공하면 한미 경제 협력의 새로운 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중 협상이 마무리된 후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한국에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워낙 오락가락하는 데다, 중국 등에 유독 약한 면모를 보이고 있어 중국과의 협상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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