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공정’, ‘평등’이란 단어는 정치인들의 입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말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을 실천할 용기가 따라야 한다. 불평등을 드러내고 기득권의 불만을 감수하는 용기 없는 정의는 결국 가면에 불과한 정의다.
최근 몇 년간 ‘공정’이라는 말은 사회적 유행어가 됐다. 그러나 그 공정은 종종 기회의 평등만을 강조하며 불평등한 결과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인다. 청년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여성과 장애인, 이주노동자가 여전히 차별받고 지역 간 격차가 커지는 현실은 외면한 채 ‘노력하면 된다’는 말 혹은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들’로 치환된다. 이는 불평등의 구조를 가리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말이다.
진짜 정의와 평등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에서 출발한다. 내게 주어진 특권을 돌아보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제도의 벽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저항을 부른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외면한 정의는 공허하고 행동하지 않는 공정은 결국 차별을 유지하는 방패가 된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다양한 노동과 삶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산업단지의 노동자, 돌봄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농민, 장애인, 청년, 이주민 등 수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간다. 이 거대한 공동체에서 ‘평등한 경기도’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식의 전환과 함께 수반되는 행정의 방향과 정치의 자기 책임 다하기다.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동의 권리를 지키며 사회적 약자의 생활권을 보호하는 일은 ‘복지’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다. 예산이 들어도, 시간이 걸려도 해야 할 일이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성평등 예산 확대, 청년·이주민 지원 강화 같은 정책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다.
물론 이런 정책은 항상 반발을 부른다. 누군가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하고 누군가는 세금 부담을 이유로 반대한다. 그러나 사회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과정이 모두에게 편할 수는 없다. 진짜 공정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 있는 결정에서 비롯된다. 행정과 정치 역시 그 용기를 내지 못하면 평등은 언제나 미뤄지고 말뿐인 구호로 남는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똑같이’가 아니라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다.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 즉 불평등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적극적 평등 정책이 필요하다. 복지, 노동, 교육, 교통, 돌봄 등 일상의 영역에서 차별을 줄이는 구체적 실천이 동반돼야 한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누구의 공정인가. 용기없는 정의는 기득권의 언어이고 평등 없는 공정은 차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차별 없는 경기도를 지향한다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행정의 용기를 보여야 한다.
평등은 이상이 아니라 방향이다. 그 길의 첫걸음은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다. 우리가 그 용기를 낸다면 가면 뒤에 가려진 차별을 드러내고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가는 지역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을 차별금지조례, 평등조례 제정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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