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불꽃 하나로 멈춘 나라... 예방이 곧 보험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경기시론] 불꽃 하나로 멈춘 나라... 예방이 곧 보험

경기일보 2025-10-16 19:16:13 신고

3줄요약
image
목경열 보건학박사·경기도장애인체육회 이사

9월26일 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튄 작은 불꽃 하나가 국가 행정의 혈관을 순식간에 막아 버렸다. 주민등록과 여권 발급, 복지 지급, 부동산 거래 등 정부의 주요 전자 행정이 일시에 멈췄다. 대통령이 말한 “국가 디지털 인프라는 국민 일상을 집행하는 혈관”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었다. 불길은 잡혔지만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여전히 불씨의 여파가 남아 있다.

 

이번 마비 사태의 불씨는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에서 시작됐지만 더 큰 문제는 교훈을 잊은 우리 자신이었다. 2022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네이버 등 주요 서비스가 마비됐을 때 정부와 업계는 단일 장애 지점(SPOF)을 없애고 이중화와 백업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메커니즘은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시스템은 정상화되지 못했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행정’은 중대본 회의에서 비난받았다. 반복된 경고를 흘려들은 대가는 국민의 불편과 행정 불신으로 돌아왔다. 위기 대응에서 무너진 것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였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니다. 노후 UPS 배터리를 고장 징후가 없다는 이유로 교체하지 않고 지하 수조형 설비로 옮겨 계속 쓰려던 공사 도중 불이 났다. 예산과 일정이 빠듯할 때 ‘아직 쓸 만하다’며 교체를 미루는 일은 일상에서는 이해될 수 있지만 국가 핵심 인프라에서는 그 판단이 곧 치명상이 된다.

 

매뉴얼은 지켜야 하는 행위다. ‘아직 작동한다’는 이유가 ‘안전까지 보장된다’는 뜻은 아니며 이는 매뉴얼을 준수하는 일이 아니다. 핵심 인프라의 원칙은 언제나 ‘예방이 곧 보험’이다. 예측 가능한 위험을 미루고 규정을 어긴 대가는 결국 더 큰 비용과 혼란, 그리고 정부 행정에 대한 불신이다.

 

공중보건의 관점에서도 이 사건은 예사롭지 않다. 전산이 멈추면 진료비 청구, 취약계층 지원, 감염병 신고처럼 시간이 생명인 업무가 흔들린다. 디지털 의존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데이터센터의 실수 하나가 행정의 모세혈관부터 대동맥까지 연쇄적으로 마비시킨다. 전자정부의 성취는 컸지만 예방을 통한 안정성 보장은 여전히 취약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권장 사용 기간을 넘긴 전원 설비와 배터리는 의무적·일괄 교체해야 한다. 이상 여부와 무관하게 ‘시간이 기준’이 돼야 한다. 둘째, 데이터센터는 액티브-액티브 이중운영 체계를 핵심 업무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단일 장애 지점을 제거하지 못하면 또 다른 ‘예상된 재난’이 반복된다. 셋째,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리튬이온 UPS 작업 표준을 재정의해야 한다. 전동 공구 사용, 방전·격리, 화재 위험 시설 지정 등 안전 매뉴얼을 실제 작업 단위로까지 세분화하고 점검을 형식이 아닌 단절 가능한 절차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위기 커뮤니케이션과 보고 체계를 손봐야 한다. ‘3시간 내 복구’ 같은 낙관은 위기 대응에서 가장 비싼 거짓말이다.

 

국민에게는 정확한 현황과 대체 수단이 신속히 공유돼야 한다. 디지털 국가는 더 편리한 나라가 아니라 더 안전하게 작동하는 나라여야 한다. 화마가 드러낸 것은 불운이 아니라 비싼 수업에 대한 경각심 부재였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의 문제로 기억해야 한다. 예방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과 생명을 지키는 보험이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