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최근 미국과 호주 등 주요 해군이 한국에 함정 MRO(유지보수·수리·운용) 협력을 요청하는 이유를 두고 방산업계 안팎에서는 ‘한국은 이젠 단순한 조선 강국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한국 조선업계의 축적된 기술력과 정비 역량이 이제는 세계 해군이 인정하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국내 함정 MRO 산업의 중심에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있다. 우선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쉬라함(T-AKE-8)의 전면 정비를 지난 3월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약 6개월간 진행된 월리 쉬라의 MRO 작업은 선체 및 기관 유지보수, 주요 장비 점검 및 교체,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전반적인 정비 작업이 포함됐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의 높은 기술적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며, 정비 품질과 효율성 면에서 성과를 입증했다.
특히 한화오션은 정비 과정에서 자체 기술력을 이용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초기 계약 시 인지하지 못한 함정의 새로운 정비 소요를 확인해 기존 계약보다 대폭 증가한 매출을 보장하는 수정 계약을 맺고, 계약 기간도 연장한 것이다. 한화오션의 추가 솔루션 제시와 문제 해결 능력은 미 해군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미 해군 7함대 소속의 4만1000톤급 군수지원함인 ‘앨런 셰퍼드함(T-AKE-3)’의 정기 정비(Regular Overhaul) 사업을 수주했다. 우리 정부의 마스가(MASGA) 제안 이후 첫 미 해군 MRO 수주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9월부터 울산 HD현대미포 인근 안벽에서 정비를 시작해 프로펠러 클리닝과 각종 탱크류 정비, 장비 검사 등을 거쳐 올해 11월 미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다. 이들 양사의 이 같은 성과로 2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미 해군 MRO 시장의 문을 공식적으로 열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 6월 게재한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 한·미 해양 협력에 대한 고찰(Don't Miss the Boat: Considerations for U.S.-South Korea Maritime Cooperation’이라는 제하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미 해군 조선 협력의 핵심국으로 명시했다. 보고서는 ‘한미 MRO 협력은 공급망 안정과 전략적 항만 운용 등에서 미국에 실질적인 이익을 준다’고 분석하면서 단순 정비를 넘어 함정 공동 건조, 조선소 인수, 기술 협력 확대 등 미래 협력 확대의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미국이 한국과의 MRO 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배경에는 기술력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선 한화오션은 다양한 특수선과 해군 지원함을 건조·정비하며 축적한 종합 기술력으로 복잡한 군용 선박의 전반적 정비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HD현대중공업도 이지스 구축함과 잠수함, 군수지원함 등 첨단 함정의 건조 경험을 통해 선체 구조, 추진기관, 전력·무장 시스템 등 전 영역의 통합 기술을 확보했다.
이러한 기술적·관리적 역량을 기반으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지난 7월, 미 해군과의 ‘정비협약(MSRA, Master Ship Repair Agreement)’을 체결하고, 공식적으로 미 해군 정비 네트워크에 진입했다. 아울러 HJ중공업도 현재 협약 체결을 위한 미 해군의 심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11월경 협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비협약은 미 함정의 MRO를 위해 미 정부가 민간 조선소와 맺는 협약으로, 미국이 운용하는 함정에 대한 MRO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비협약을 사전에 체결해야 한다. 이 협약에 따라 양사는 향후 5년간 미국 해상 수송사령부(Military Sealift Command) 소속의 지원함 뿐 아니라 미 해군이 운용하고 있는 함정에 대한 MRO 사업 입찰 참여 자격을 확보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조선 인프라 역시 미 해군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울산, 거제, 부산 등 조선소 밀집 지역은 이미 대형 도크와 첨단 정비시설, 숙련 인력을 갖춘 최적의 해양 유지보수 거점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인도태평양해역에서 미 함정이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은 미 해군이 아시아 내 MRO 허브를 구축하는 데 가장 실질적인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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