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국정감사가 시작된 지 불과 사흘 만에 국회를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공식적인 국정감사 현장에서 여야 의원들의 고성과 반말, 조롱성 발언이 이어지며 품격을 잃는 장면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6일 국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이번 국정감사는 지난 13일 막을 올렸다. 17개 국회 상임위원회가 834개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다음 달 6일까지 국정감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국정감사 개시 3일 차인 전날 기준으로 각 상임위원회는 최소 2차례 이상의 감사를 진행했다. 대다수의 상임위원회가 국정감사에 맞는 정책 질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일부 상임위원회에서 과열된 공방이 계속되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의 국정감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지난 13일 대법원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인사말 후 자리를 뜨는 것이 관례였던 대법원장의 이석을 허용하지 않고 85분간 ‘대선 개입’ 의혹 질의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무소속 최혁진 의원이 “친일 사법”이라고 주장하며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얼굴이 합성된 ‘조요토미 희대요시’ 사진을 꺼내 들면서 장내가 아수라장이 됐다.
이를 두고 여권 내부에서도 본질에서 벗어난 질의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범여권 의원들이 차분하게 질문을 하는 것이 맞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욕설과 고성이 오가며 소란이 일었다.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 국방위원장이 국방부 안규백 장관에게 ‘내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자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거세게 반발했다. 설전 도중 비방과 욕설이 나오자 결국 성 국방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했고 국정감사는 약 30분간 중단됐다.
지난 14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국정감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이 지난달 2일과 5일경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은 비난성 문자메시지를 박 의원의 전화번호도 가리지 않고 그대로 공개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화번호까지 공개하나”, “‘개딸’(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층)들이 좌표를 찍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고성으로 대응하면서 감사가 중지되는 등 파행을 빚었다.
같은 날 법사위에서는 최고령 현역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 사이에 ‘반말 소동’도 벌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23살 차이로 박 의원이 연장자다.
전날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가 진행한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증인 채택 여부에 대해 논의하던 중 간첩 활동 이력을 문제 삼은 야당과 이에 반발한 여당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 같은 파행이 이어지자 국정감사가 본래 취지를 잃고 있다는 국민적 인식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갤럽이 성인 남녀 1005명에게 국정감사 성과 여부를 물은 결과, ‘성과가 있었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없었다’는 51%를 기록했다. 국정감사 성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508명)들의 주요 이유로는 ‘상대 비방·정쟁·싸우기만 함’(21%), ‘개선·해결된 일 없음’(19%) 등이 꼽혔다.
2023년 한국갤럽이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같은 내용의 조사를 살펴보면 ‘성과가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15%에 그쳤다. 49%는 ‘성과가 없었다’고 평가한 셈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에서 참조 가능하다.
국민의 비판을 받은 여야의 태도가 곧바로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사흘간의 대립으로 감정의 골만 깊어져 고발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전날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박정훈 의원과 갈등을 빚은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폭행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욕설을 비롯해 대통령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계 의혹 주장 등을 문제 삼아 박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경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기간 동안 극단적 발언과 과도한 공방을 이어가는 것은 지역구 홍보, 언론의 주목도 확보, 강성 지지층 겨냥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즉, 정책 검증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국정감사 본래 목적에 맞춰 정책 방향과 대안 중심의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소장은 본보에 “최근 국정감사는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조희대 대법원장, 대통령실 김현지 제1부속실장, 캄보디아 납치·살인사건과 관련 3대 이슈가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극단적 발언과 메시지가 눈에 띄고 있다”며 “이는 ‘유튜브 민주주의’ 현상과 맞물려 정치권이 강성 지지층에 맞는 자극적 메시지를 내놓을수록 정치 평가가 유리하게 나타나는 구조와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국정감사 본래의 취지인 ‘정부를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 이익을 지키는 역할’보다는 자극적 경쟁이 앞서고 있다”며 “앞으로 남은 국정감사에서는 이러한 극단적 경쟁에서 벗어나 방향과 대안 중심의 국정감사로 나아가 국민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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