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뉴스] 김혜인 기자 = 한국 영화계가 다시 한 번 1970년대의 총성과 마주했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뒤흔든 저격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서울의 봄〉, 〈남산의 부장들〉, 〈내부자들〉에 이어 현대사의 비극적 순간을 다시 소환하는 이 작품은 개봉 전부터 “또 그 이야기인가”라는 질문과 “이제는 그 이야기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기대를 동시에 받는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감독 허진호는 사랑과 관계를 다뤘던 이전 작품들에서 벗어나, 시대의 폭력 속 인간의 내면을 탐색한다. 사건의 진실보다 인간의 심리, 권력의 공포보다 개인의 윤리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정치 스릴러의 외피 아래 인간학적 질문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의 의미는 갈라진다. 한쪽에서는 이를 “역사의 반복”이라 보고, 다른 쪽에서는 “감정의 재해석”으로 읽는다.
최근 한국 영화계는 ‘실화 기반의 현대사 영화’라는 익숙한 공식을 즐겨 사용한다. 상업적으로 검증된 서사 구조, 대중이 알고 있는 비극의 리듬, 그리고 배우들의 중량감 있는 연기가 결합될 때, 관객은 실패하지 않는 감정의 회로 속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그 감정이 익숙해질 때 발생한다. 예술의 본질은 ‘다른 시선’에 있는데, 관객의 감정이 이미 길들여진다면 예술은 현실의 복제에 머무른다.
〈암살자(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 틀 안에서 탈피하려는 의지를 보이기 때문이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각각 형사, 사회부장, 신입 기자로 얽히며 그날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단순한 권력 비판이 아니라 “누가 진짜 암살자인가”를 묻는 인간학적 실험으로 확장된다. 감독은 사건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대신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균열을 통해 시대의 도덕을 해체한다.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소재 때문이 아니라 시선 덕분일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다르게 던지는 행위다. 〈암살자(들)〉이 보여주는 ‘또 한 번의 8월 15일’은 결국 관객에게 묻는다. “그날의 총성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역사를 다시 다루는 것은 피로의 반복이 될 수도, 성찰의 확장이 될 수도 있다. 예술이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단지 재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그 기억을 다시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암살자(들)〉은 그 경계 위에서 서 있다.
반복인가, 갱신인가. 그것은 결국 이 시대의 관객이 어떤 시선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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