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현대 한국 사회에서 명절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고된 노동과 가정 내 갈등을 이유로 또 ‘현대화된 문화’라는 이름 아래 차례를 지내고 제삿밥을 나누던 전통적 명절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전처럼 극한 명절 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일부 구성원들의 명절에는 깊은 쓸쓸함이 서려 있다. 바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이주민의 이야기다.
국내 이주민 인구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65만783명으로 매년 역대 최다를 경신 중이다. 이 중에서도 경기도 안양시는 이주민 인구 밀도가 특히 높다. 전체 인구 약 61만 명 가운데 9만 명 이상이 외국인으로, 전체의 13.2%를 차지한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작은 지구촌이라 불릴 만하다.
통계청은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일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상주 외국인 중 약 101만 명이 취업 상태로, 이들은 광·제조업, 도소매, 숙박·음식업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에게 송금하거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낯선 땅에서 땀 흘리는 만큼, 가족 없는 명절에 그들이 느끼는 고립감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특히 명절은 그 외로움이 가장 짙게 배어드는 시기다. 대부분의 시설과 가게가 문을 닫고 마을과 시내는 고요해진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 속에서 이주민들은 쉽게 갈 곳을 잃는다. 일부는 홀로 집에 머물고 또 다른 이들은 평소처럼 일터로 향한다.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든 이주민에게 여전히 명절의 문턱은 높은 실정이다.
돌아갈 친정 없는 외로움...명절 의미, 직접 만들었다
이주민 당사자와 이주민 지원 단체가 직접 꼽은 명절 연휴에 이주민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심리적 고독’이었다.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출신 최연화씨는 ‘황금 연휴’로 불릴 만큼 길었다고 평가되는 지난 추석 명절에 대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명절 문화를 잘 모르는 이주민들에게는 너무나도 외로운 날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자를 따라 한국에 온 지 20년이 가까이 된 ‘선배 이주민’으로, 한국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명절 노동, 외로움 등으로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배경으로 다른 이주민들을 도울 의지를 갖게 됐다.
연화씨는 음력 8월 15일 중국의 중추절을 언급하며 “가족들끼리 모이고 월병이라는 음식을 나눠먹고 달맞이를 하는 시기”라며 “중국에서는 명절이라고 하면 보통 ‘쉼’이 되는 날이었는데, 한국의 추석은 쉼이라기보다 노동의 시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추석 명절처럼 긴 연휴가 끝난 이후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주민에게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냈냐고 물으면 ‘잠만 잤다’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이주민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감정으로, 예전에 심할 때는 명절이 명절 같지 않고 차라리 없었으면 할 때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추석 명절은 개천절이었던 지난 3일부터 한글날, 대체공휴일 등이 연결돼 약 열흘이 연휴로 이어진 만큼 이주민센터가 열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이주민 사회에서는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이들끼리 모임을 갖는 시간도 갖게 됐다.
연화씨는 “연휴가 길었던 만큼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향수를 달래기 위해 우리 이주민들끼리 ‘외갓집 가자’라는 활동을 만들어서 서로의 친정이 돼 주기로 했다”며 “송편 대신 인절미를 만들어서 주변에 감사한 분들께 나눠주고 명절 놀이도 함께 하는 등 활동을 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표현했다.
연화씨 주변에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리의 평범한 카페 문턱조차 쉽게 넘지 못할 정도로 타국에 낯섦을 느끼는 이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있는 것들이 생소하겠지만 직접 다가가보면 사실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절미를 통해 전해주고 싶었다”며 “이주민들은 한국에 온 뒤 항상 수혜자의 역할에 있었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직접 음식을 나눠주는 주체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명절엔 문 닫는 이주민 복지...“휴관도 대상자 특성 고려돼야”
이주민 인권과 복지를 위해 1991년부터 활동해온 비영리민간단체 샬롬의집은 지난 5일 추석 명절을 맞아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서울 경복궁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탐방, 한복 입기 등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 12일에는 한국어 교실 시간을 활용해 전통놀이 및 선물 나눔 행사도 마련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 지 5년이 지난 쥬엘 라나씨는 이번 행사에서 붉은 곤룡포를 입고 경복궁을 방문했다. 평소에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쥬엘씨는 이번 기회로 평일에 갈 수 없었던 국립역사박물관을 처음으로 관광할 수 있었다.
라나씨는 “올해 추석에는 멋진 한복을 입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샬롬의집에는 가족 같은 분들이 많이 있는데, 한국에서 새로 사귄 은인인 ‘어머니’가 떡을 만들어 나눠주셔서 송편도 먹어볼 수 있었다”며 웃었다.
샬롬의집이 연휴 도중인 주말에 명절맞이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특별한 일이다. 국내 많은 이주민센터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공공센터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명절 연휴 당일이나 주말에는 휴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서울외국인주민센터도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상담과 교육 등 센터의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휴관을 알린 바 있다.
샬롬의집 윤진규 국장은 “샬롬의집처럼 NGO(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로 운영되지 않는 이상은 예산 부족 등의 다양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공공센터의 경우 연휴 때 운영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이주민들은 대부분 평일에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휴일에만 센터를 이용 가능한 경우가 많다. 대상자의 특성이 크게 고려되지 않은 휴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민센터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 이주민들은 민원을 제기하거나 시스템에 대한 개선을 요구할 창구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윤 국장은 “국내 센터가 존재하는 노인이나 장애인의 경우 참정권이라도 있지만, 이주민의 경우 투표를 통해 시스템을 바꿀 수도 없다”며 “어떤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경우 그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내기보다 센터 자체를 이용하지 않는 이주민이 더 많다 보니 불만 사항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연휴에도 일하는 이주민들...권리 보장은 어디로
추석 연휴 중에도 ‘노동’을 피하지 못한 이주민도 많았다. 명절은 한국인 대부분이 귀향과 휴식을 즐기는 기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명절상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휴일수당을 주지 않는 차별뿐이었다.
윤 국장은 “연휴에도 일하는 분들이 많다. ‘당신들은 고향도 가지 않으니 일하라’는 식으로 명절 당일 하루만 쉬게 하고, 나머지는 그냥 평일처럼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 5일 진행한 샬롬의집 명절 행사에도 공장 근무 일정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 이주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주민들의 곁에서 보고 들은 바로, 실제로 명절 기간에 일하면서도 법정 휴일수당이나 대체휴무를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적지 않았다. 특히 이 같은 사각지대에서 미등록 체류자는 더 취약하다. 그는 “미등록 상태면 근로계약서가 없으니 아예 받을 방법이 없다. 억울해도 신고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문제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명절 ‘떡값’이나 상여금에서도 차별은 이어진다. 그는 “한국인 직원들은 김 한 박스라도 받는데, 경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올해는 아무것도 없다’는 식이 많다”면서 “예전에는 작은 명절선물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이주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귀향’ 없이도 행복할 수 있도록...변화해야 할 앞으로의 명절
다가오는 2026년 2월 설날도 명절 연휴와 주말이 겹쳐 장기 휴일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2월 이상기후로 인한 극한 한파가 이어졌던 만큼, 다가오는 새해와 설날 역시 뼈 시린 날씨의 명절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윤 국장은 “명절에 일하는 이주민들이 굉장히 많지만 이분들의 휴일 수당을 챙겨주기 위한 공식적인 활동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고용노동부에서 명절 근로와 관련해 기업들에게 휴일 수당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작업을 진행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화씨는 “여전히 많은 이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민들이 집밖으로 나와 우리 사회에 함께 녹아들 수 있도록 자그마한 무대가 있었으면 한다”면서 “함께 모여 나눠먹을 음식을 만들고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작게나마 소속감을 느낄 장소가 시 차원에서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이주민들에게도 부모님이나 형제를 한국에서 편하게 모실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