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컬럼] '슘페터의 혁신'과 노벨경제학상 그리고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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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컬럼] '슘페터의 혁신'과 노벨경제학상 그리고 인공지능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0-16 08:19: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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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혁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수상자들의 연구는 서로 다른 시대와 방법론에서 출발했지만, 한 가지 공통된 결론으로 향한다.

 경제의 근본 동력은 자본도, 노동도 아닌 지식과 혁신,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생태계라는 점이다. 그 생각의 뿌리는 20세기 초의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가 남긴 말, “창조적 파괴에 있다. 슘페터는 경제를 고정된 균형의 세계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경제는 늘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혁신이 일어나고, 그 혁신이 낡은 질서를 허물며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그는 기업가를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사회를 바꾸는 변혁자로 보았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바로 이 창조적 파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오래된 생각이 올해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다.

 아기옹, 하위트, 모키어 세 경제학자는 슘페터의 직관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렸다. 그들의 연구는 기술혁신을 경제의 내부 요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혁신은 외부에서 떨어지는 번개가 아니라, 경쟁과 보상 속에서 기업과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산업혁명 역시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지식이 제도 속에 자리 잡은 결과라고 해석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연구가 혁신을 성장의 내적 요인으로 통합함으로써, 경제학이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고 평했다. 이 말은 곧, 100년 전의 슘페터 이론이 오늘 다시 검증받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상이 인공지능이 몰고 온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AI는 지금 혁신의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기업이 기술을 구현하며, 시장이 반응했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스스로 진화하며 혁신을 만들어낸다.

 AI는 생각의 속도를 인간이 따라잡기 힘들 만큼 끌어올렸고, 산업 간 경계도 허물고 있다. 그야말로 창조적 파괴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AI혁명의 특성을 요약하면 세 가지다.

 첫째는 속도다. 기술주기가 과거의 십 년, 수십 년 단위에서 이제는 몇 개월 단위로 바뀌었다.

 둘째는 범위다. 혁신이 산업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의료, 금융, 에너지, 문화, 국방 등 전 분야로 퍼진다.

 셋째는 자기증폭성이다. AI는 학습을 통해 스스로 개선되는 존재이기에, 혁신의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그만큼 인간 중심의 혁신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1] AI시대의 3대 혁신모델 비교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혁신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신을 받아들이고 제도화할 수 있는 사회의 능력이다. 이를 경제학자들은 혁신흡수능력(absorptive capacity)’이라고 부른다. 이 능력은 기술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유연한 제도, 인재와 교육 시스템, 신뢰와 협력의 문화, 그리고 공정한 경쟁 구조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AI시대의 혁신은 결국 사회 전체의 대응력 시험이 된다. 예를 들어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실이 일부 기업이나 특정 지역에 집중된다면 전체 사회의 성장은 오히려 정체될 수 있다. 데이터의 독점, 플랫폼의 집중, 국가 간 기술 격차 같은 문제는 오히려 혁신의 역동성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오늘날의 창조적 파괴는 무조건적인 파괴가 아니라, 균형 잡힌 혁신, 즉 제도적·윤리적 질서 속에서의 혁신이어야 한다. 올해의 노벨경제학상은 그 점을 명확히 경고한다.

[2] 혁신흡수능력의 구조 기술보다 제도가 중요하다

 한국의 현실을 여기에 비춰보면 단면이 선명하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술 수용력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 반도체, 전기차, AI 등 어떤 기술이든 빠르게 받아들이지만, 제도와 조직의 변화 속도는 한참 느리다. 기업은 민첩하지만, 행정은 여전히 관료적이고, 교육은 산업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AI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해도 경제 전반의 체감 생산성이 높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슘페터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한국은 창조의 속도보다 파괴의 속도가 느린 사회. 새로운 기술은 등장하지만, 낡은 제도와 구조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혁신의 불균형이 누적되고, 성장의 과실은 제한된 영역에 갇힌다.

 앞으로의 10년은 이 간극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 AI혁신의 시대에 한국이 성공하려면, 기술이 아니라 제도·교육·문화의 재설계에 나서야 한다. 혁신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 진짜 경쟁력이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속도는 상상을 넘어선다. 그러나 그 속도만큼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AI가 스스로 혁신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어떤 혁신을 원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 정신도, 결국 인간의 상상력과 판단력에서 출발한다. 기계는 파괴할 수 있지만, 무엇을 창조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경제학의 본질적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경제는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혁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과연 이 파괴의 속도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는 이 물음에 새로운 답을 요구한다. 기술이 성장의 엔진이 된 시대일수록, 제도와 사회가 그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진짜 경쟁력이 된다.

 슘페터가 100년 전 말했던 창조적 파괴는 이제 AI에 의해 재현되고, 인간의 선택에 의해 완성된다. 경제학이 다시 인간의 문제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혁신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자신을 바꿀 용기가 있는가의 문제다.” 슘페터의 말이 오늘의 AI시대에도 그대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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