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경영권①］행동주의 펀드 '새로운 권력' 부상

[프라임경제] 대한민국 재계의 권력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한때 오너 일가의 전유물이던 경영권이 이제는 행동주의 펀드, 사모펀드, 소액주주 등으로 기업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는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주제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배당 확대 등을 명분으로 기업 의사결정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논리 아래, 오너 중심 지배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는 셈이다.

◆한진칼·SM엔터테인먼트 '행동주의 펀드' 두각

2018년 한진그룹의 '남매의 난'으로 촉발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은 한국형 행동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는 2018년 11월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약 9%를 최초 매입하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친화 정책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당시 KCGI는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손잡고 이른바 '3자 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2020년 3월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 측과 경영권을 두고 정면 충돌했으나, 조 회장 측이 산업은행 등의 지원을 업고 방어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이 승리했지만,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주주의 권리를 강조한 KCGI의 시도는 이후 시장 전반의 행동주의 확산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다.

© 쳇gpt 생성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은 행동주의가 문화산업으로 확산된 대표 사례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은 SM의 지배구조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문제 삼으며 주주 행동에 나섰다. SM 경영진이 얼라인의 요구를 수용하고, 카카오가 SM의 2대 주주로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다. 얼라인은 카카오 측을 지지하며 '주주 중심 경영'을 내세웠다.

그 결과 SM은 이수만 프로듀싱 계약 조기 종료를 발표하게 됐고,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조기 종료하게 됐다. 얼라인의 적극적 행동에 따라 1대 주주를 경영 일선에서 몰아내는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오스템임플란트, 행동주의 성과와 한계 동시에 보여

치과용 임플란트 전문기업 오스템임플란트 사례는 행동주의의 실질적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오스템임플란트는 2021년 2200억원대의 대규모 횡령 사건이 발생하며 지배구조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지분을 매입하고, 창업주 최규옥 회장의 퇴진과 이사회 독립성 강화, 내부통제 개선 등을 요구하며 경영 정상화를 촉구했다.

오스템임플란트 트리플타워 전경. © 오스템임플란트

그러나 최 회장 측이 MBK파트너스·UCK 컨소시엄을 앞세워 공개매수를 진행, 판도가 뒤집혔다. 컨소시엄이 90% 이상 지분 확보에 성공하자 KCGI는 공개매수에 응하며 철수했고, 경영권은 사모펀드 측으로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KCGI의 개입은 단기적 주가 상승과 시장 경각심 제고에는 기여했으나, 궁극적인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 중심 경영체제 구축에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처럼 행동주의 펀드의 등장은 한국 재계에 명확한 변화를 가져왔다. 오너 일가 중심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가 흔들리고, 주주와 이사회 중심의 견제 시스템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기 수익 추구'라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일부 펀드는 장기적 경영 안정성보다는 배당 확대와 주가 상승에 초점을 맞추며 경영진과 충돌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주주 권익을 강화하며, 한국 기업 생태계에 '견제와 균형'의 문화를 확산하는 역할도 하지만 단기 수익을 우선시하는 투자 행태는 장기적 경영 안정성과 기업 가치 제고에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