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997년,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외환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급속한 산업화와 성장의 여세를 몰아 확장일로에 있었던 국내 기업들은 위기를 기점으로 급제동에 직면했고, 그 여파는 전 산업을 뒤흔들며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과도한 차입경영과 무리한 사업 확장을 일삼던 대기업들이 잇달아 부도를 맞으면서, 위기는 금융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 시스템 전반의 한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한국 사회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고통 분담이라는 전례 없는 처방전을 받아들여야 했다.
외환위기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대기업들의 과잉 부채 구조였다. 1990년대 초반, 글로벌 저금리 기조와 국제 금융시장의 유동성 확대에 편승한 국내 대기업들은 외화 차입을 통해 공격적으로 외형을 확대했다.
하지만 환율 급등과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속한 이탈이 겹치면서 기업들은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연쇄적으로 도산했다.
가장 먼저 위기의 뇌관을 건드린 것은 한보그룹이었다. 1980년대 철강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한보는 무리한 자금 조달과 확장 전략으로 부채 비율이 급등했다. 외환위기 직후 자금 조달이 막히자 1997년 2월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대기업 부도 사태의 서막을 열었다.
한보의 붕괴는 단순한 한 기업의 실패에 그치지 않았다. 그룹의 도산은 수많은 하청업체와 중소 협력사들의 연쇄 도산을 초래했고, 국내 제조업 생태계 전반에 균열을 일으켰다.
삼미그룹 역시 외환위기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건설·화학·제강 등 다방면에 걸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던 삼미는 금융경색과 내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면서 그룹 전체가 붕괴의 길을 걸었다.
이어 대우그룹은 외환위기의 상징적 희생양이 됐다.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전방위 산업에 진출하며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던 대우는 무리한 글로벌 확장과 차입경영의 후폭풍으로 1999년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대우자동차와 대우조선 등 핵심 계열사들은 구조조정과 매각을 피할 수 없었고, 수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대우의 부도는 한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며 국가 경제 전반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같은 경제적 격변기를 현실감 있게 담아낸 드라마가 바로 ‘태풍상사’다. 작품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대기업의 몰락과 그로 인한 개인들의 삶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배우 이준호가 맡은 주인공 강태풍은 나이트클럽에서 인기를 끌던 소위 '압구정 날나리'에서,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 가족의 가장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그의 인생 역정은 IMF가 한순간에 뒤흔든 개인 삶의 전형을 상징한다.
배우 김민하가 열연 중인 또 다른 주인공 오미선은 전형적인 ‘K-장녀’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채 학업과 노동을 병행한다. 그녀의 모습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청춘들의 생존 본능과 책임감을 대변한다.
‘태풍상사’는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에 남긴 상처와 교훈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경제적 위기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게 만들고, 미래를 준비하는 통찰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대극을 넘어서는 울림을 주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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