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리모델링은 단순한 건축 공사가 아니다. 주거 안정과 기후 대응이라는 2가지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생활형 정책이자 향후 한국 사회가 반드시 선택할 방향이다."
신동우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장은 인터뷰 서두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주거복지와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리모델링을 꼽았다.
리모델링은 기존 건축물을 철거하지 않고, 구조체를 활용해 주거 성능을 개선하는 정비 방식이다. 불필요한 이주나 공사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건설 폐기물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친환경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고령층과 저소득층에게는 재건축보단 현실적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신동우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장 = 김주환 기자
본지는 30년 이상 노후 공동주택 급증세와 본격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이하 학회)가 제시하는 비전과 정책 개선 과제를 알아보기 위해 신동우 학회장을 만나봤다.
◆리모델링 막는 최대 장벽 "규제 그리고 불확실성"
국내 리모델링 제도는 2000년대 초 도입 이후 일정한 성과를 이뤄냈다. 다만 최근 들어 점차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력벽 철거 허용 범위와 수직 증축 요건 등 핵심 규제가 수시로 바뀌면서 사업 예측성이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심의·인허가 절차가 길어져 일부 사업의 경우 7년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현 제도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경직된 규제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내력벽 철거 범위나 수직증축 허용 등 조건이 수시로 바뀌고 있어 조합이나 주민이 계획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규제 완화에 앞서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이다."
사실 리모델링은 여전히 안전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비업계 시선이다. 하지만 신 학회장은 "2000년대 이후 준공된 18개 단지 모두 안전하게 거주하고 있다"는 게 리모델링 안정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근거라는 입장이다.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안전하게 완공한 나라에서 '아파트 리모델링이 위험하다'는 의견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이미 국내 건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으며, 인공지능(AI)·센싱·디지털 트윈 등 최신 기술을 접목하면 구조 안전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다. 때문에 제도는 기술 발전을 막는 장벽이 아닌, 혁신을 보장하는 관리 장치로 개선돼야 한다."
◆공동체 유지하는 주거 대안 '리모델링'
리모델링은 단순히 비용과 기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존 주거 공간과 지역 공동체를 보존하면서 주거 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평가된다.
"주거 문화와 지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재건축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특히 1기 신도시와 같은 고령화·노후화 지역에서는 리모델링이 고령층 부담을 줄이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신동우 학회장은 국민 주거 80%를 차지하는 '공동주택 장기 수명 연장'이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연도별 아파트 공급량 누적 현황 ©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
"노후 공동주택 수명을 연장해 양질 주택으로 전환해 100년, 200년 주택으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하는 게 국가적으로도 시급하다. 반드시 10년 내로는 국가적 아젠다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리모델링 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제도 개선 외에도 전문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설계사무소, 엔지니어링 업체, 전문 인력 등 모두가 부족한 실정이다.
"리모델링 사업은 초기 단계에서 관리가 부실하면 갈등으로 번지기 쉽다. 경험과 자격을 갖춘 조합 간부나 추진위원이 드물다는 점은 사업 파행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이를 제도권 교육과정 안에 포함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학회는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및 지자체를 통한 정책 개선에 힘쓰고 있다. 더불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관리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전문 인재를 양성해 초기에 투입하지 않으면 미래 리모델링 시장은 갈등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갈등 줄이는 유일한 해법은 '투명성'
신 학회장은 "리모델링 성패가 조합원 갈등에 달렸다"라는 입장이다. 이런 갈등 대다수가 정보 비대칭에서 비롯되며, 사업 초기부터 원가 구조·사업 계획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는 설명이다.
"주민들에게 예상 분담금과 비례율을 상시 공개하고, 중립적이고 역량 있는 사업관리자가 제도 안에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갈등이 줄고, 사업도 제 속도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유럽 주요국에서는 이미 신축보다 리모델링 시장 비중이 더 크다. 반면 한국은 신축 중심 정책과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다. 다만 전체 주거 80%를 차지하는 아파트 구조를 감안하면 한국이야말로 '리모델링 제도화가 시급한 나라'라는 게 신 회장 진단이다.
주택 수명 연장을 위한 재정비 스펙트럼 ©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
그는 10년 뒤 한국 리모델링 시장을 "특수 사업이 아닌, 일상 주거 재정비 수단"으로 그렸다.
"디지털화·친환경화·표준화가 정착되면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균형 있게 발전할 것이다. 주민들은 분담금, 일정, 품질 등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문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신 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노후 공동주택 리모델링은 단순 건축이 아니라 국민 생활과 직결된 생활형 주거복지다. 이는 곧 고령층 삶의 질을 지키고, 서민 주거 부담을 줄이며,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친환경 해법을 제시하는 길이다. 리모델링이 '국가적 아젠다'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한국 주거 문화 지속 가능성이 보장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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