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안형준 사장이 기상캐스터 오요안나(1996~2024) 유족에게 사과했다.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세상을 떠난 지 1년 1개월 만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안 사장은 15일 서울 상암동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먼저 꽃다운 나이에 이른 영면에 든 오요안나씨 명복을 빈다"며 "헤아리기 힘든 슬픔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오신 고인 어머님을 비롯한 유족께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안 사장은 "오늘의 이 합의는,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 한다'는 문화방송의 다짐이기도 하다"며 "MBC는 4월 상생협력담당관 직제를 신설해 프리랜서를 비롯해 MBC에서 일하는 모든 분의 고충과 갈등 문제를 전담할 창구를 마련했고,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대우 등의 비위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도 수시로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있는 공영방송사로서 문화방송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직문화, 그리고 더 나은 일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며 "다시 한번 오요안나씨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했다.
MBC는 고인 1주기인 지난달 16일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제도를 폐지하고, 기상기후 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정규직 채용하기로 했다"며 "기존 기상캐스터 역할은 물론 취재, 출연, 콘텐츠 제작을 담당, 전문적인 기상·기후 정보를 전달한다.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 공개채용을 통해 선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의 어머니 장연미씨는 지난달 8일부터 MBC 사옥 앞에서 단식 투쟁을 시작했으나 MBC와 잠정 합의하며 27일 만인 이달 5일 중단했다.
이날 기자회견 전 참석자들은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안 사장과 장씨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장씨는 고인의 명예사원증을 받고 눈물을 쏟았다. 안 사장은 장씨와 포옹하며 위로를 건넸다.
장씨는 "우리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장 내 괴롭힘, 그 문제 역시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회사가 협상 과정에 발표한 기상캐스터 전문가 제도 도입, 기상캐스터 프리랜서 폐지안이 어떻게 실행될 지 지켜보겠다. 무엇보다 새 제도 도입으로 기존의 기상 캐스터들이 일자리를 갑자기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회사가 약속한 재발방지 대책과 제도 개선 약속은 그 무게가 매우 무겁고 방송사 전체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저는 안다"며 "죽음 이후 투쟁을 거치면서 얻어낸 결과가 또다시 알맹이 없는 선언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MBC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오늘의 약속을 하나씩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MBC 사옥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그간의 투쟁에 대한 보고대회가 열렸다. 장씨는 분향소에 마련된 딸의 사진을 보며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보고대회에 참여한 각 시민단체들은 장씨와 마찬가지로 MBC가 이날 발표한 합의 내용이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유경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은 "오늘 합의문을 주고받으면서 바로 이행이 됐다고 볼 만한 내용은 '명예사원증 수여' 한 가지였다고 생각한다"며 "이미 지금 시행하고 있는 상생협력관을 비롯해 이후에 할 일이 아니라 이미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제도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끝났다"고 아쉬움의 목소리를 냈다.
김 위원은 "(합의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행하는지 반드시 지켜봐야 하고,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MBC가 내년 9월 15일까지 사옥 내부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행되는지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용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대표 역시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의 정규직화 실마리를 만들었기에 의미있는 결과를 보여준 것"이라면서도 "이는 시작일 뿐이다. 사회 정의, 노동 정의를 외치는 공영방송이라면 불평등과 차별 등으로 얼룩진 방송 노동자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방송사는 착취를 멈춰라" "차별을 멈춰라" 등 구호를 외쳤다. 분향소는 이날을 끝으로 철거됐다.
고인은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으나, 3개월 만에 부고가 알려졌다. 고인 휴대폰에서 원고지 17장 분량 유서가 발견됐는데, 동료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족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해자로 지목된 A를 상대로 5억1000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MBC는 고인 사망 4개월 만인 올해 1월 말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고용노동부는 5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서울서부지청이 MBC를 상대로 진행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고인에 관한 "조직 내 괴롭힘이 있었다"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는 않아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고용부는 가해자가 1명인지 다수인지 밝히지 않았으나, A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MBC는 A와 계약을 해지했으며, 김가영을 비롯해 이현승, 최아리와는 재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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