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이 정비나 검사로 멈추는 순간, 주민들의 일상도 멈춰 서고 있다. 대체 여객선이 투입되지 않아 병원 진료나 생업은 물론, 응급 상황조차 대처할 수 없는 '교통 고립' 사태가 전국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영암·무안·신안)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여객선 항로단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여수·인천·통영 등 8개 지자체에서 총 33건의 여객선 운항 중단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누적 운항 중단일수는 무려 405일, 1년 넘게 섬이 바다로부터 고립된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대체 여객선 투입 의무'가 없다는 데 있다. 현행 제도상 여객선 본선이 정비나 검사로 운항을 멈추면, 이를 대신할 예비선을 투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해양수산청은 운항 계약 시 업체에 '대체 운항 책임'을 권고하고 있지만, 계약상 필수 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강제력이 전무하다.
결국 대체 여객선 투입 여부는 전적으로 선사의 선의(善意) 에 달려 있다. 하지만 선사 입장에서는 추가 인력과 운영비가 발생하는 대체 운항을 자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국가보조항로의 경우, 3년 단위로 위탁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 탓에 선사들은 '계약 기간 내 수익 극대화'를 우선하면서 대체선 운항을 꺼리는 경향이 짙다.
그 결과 '국가가 보조하는 항로'조차 주민의 교통권이 보장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20일, 목포와 율도·달리도·외달도를 연결하는 국가보조항로에서 실제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운항 중이던 슬로아일랜드호가 갑작스러운 고장으로 긴급 정비에 들어가자, 나흘간 대체선 투입이 이뤄지지 않아 480명의 주민과 관광객이 섬에 발이 묶였다.
결국 지자체가 긴급히 소형 행정선을 투입했지만, 승선 정원이 적고 좌석이 없어 주민들은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장을 보러 나가지 못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응급 환자 발생 시 대응도 제한적이었다.
신안군의 한 주민은 "배 한 척이 멈추면 모든 게 멈춘다. 날씨가 나빠도, 배가 고장 나도, 우리는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삼석 의원은 "지난 3년간 정부가 여객선 안정화사업과 국가보조항로 지원에 1,338억 원을 투입했지만, 정작 섬 주민의 기본적 교통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여객선이 정비나 검사로 운항할 수 없을 경우, 선사가 대체 여객선을 의무적으로 투입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며 "섬 주민의 이동권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또 "무엇보다 섬 주민의 교통권은 국가의 책무"라며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여객선 공영제'를 조속히 시행해 여객선 운항의 공공성과 지속성을 국가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여객선 공영제 도입과 관련한 시범사업 검토에 착수했으나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는 "대체 여객선 투입 의무화 방안은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예산과 선박 확보 문제가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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