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사우디 원전 수출 '미국형 노형' 채택 압박…韓, 수익성·주권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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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사우디 원전 수출 '미국형 노형' 채택 압박…韓, 수익성·주권 고심

폴리뉴스 2025-10-15 10:05:15 신고

미국의 원전 부활의 상징인 조지아주 보글 원전 [사진=EPA/연합뉴스]
미국의 원전 부활의 상징인 조지아주 보글 원전 [사진=EPA/연합뉴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참여하는 '팀코리아'가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를 목표로 힘을 모으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 미국형 원전 모델인 AP1000 채택을 강하게 요구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정부와 업계에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15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우디에 수출할 원전 노형을 AP1000으로 바꾸고,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공동수주를 추진하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한국 쪽에서는 지금까지 수익성과 기술력 면에서 다져온 APR1400 중심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 8월 말, APEC 에너지 장관 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제임스 댄리 미국 에너지부 차관이 한국 정부와 한전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이런 제안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측은 이미 한전과 한수원, 그리고 웨스팅하우스 간의 기술 및 지적재산권 분쟁이 정리됐고, 양국 간 원전 협력 의지도 충분히 갖춰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우디 원전 사업에서 AP1000 프로젝트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1월, 한전과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글로벌 합의문을 체결하고 나서 팀코리아의 원전 수출이 탄력을 받는 상황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국이 원전 수출의 주도권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이 이렇게 강하게 압박하는 배경으로는 복합적인 전략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먼저,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로 미국 내에서 신규 원전 인허가가 사실상 멈추면서 원전 공급망이 무너진 실정이라는 평가가 있다.

한국 기업들이 가진 설계·조달·시공 역량이 미국에겐 공급망을 복원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사우디에서 AP1000을 먼저 건설해 부품과 조달망을 마련하면, 미국 본토 내 원전 사업 활성화에도 힘을 실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 원전 수주에도 관여한 전례가 있다.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는 한국형 원전에 웨스팅하우스 기술이 들어갔다고 미국 에너지부가 판정했고, 이후 한국 정부가 웨스팅하우스와 계약 조건을 조정해야 하는 압박을 받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미국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한국의 원전 수출에 전방위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우디 원전 프로젝트와 관련해 다양한 수출 옵션을 검토하고 있고, APR1400을 포함한 여러 노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APR1400도 미국의 기술 승인이 없으면 수출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내부적으로는 만약 미국 제안을 수용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PR1400은 그동안 한국이 자체적으로 부품 공급망과 현장 경험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모델이다. 반면 AP1000을 새로 도입한다면 공급망을 재정비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공사 기간 지연도 걱정된다.

실제로 미국이 노형 전환과 공동수주를 요구하고 있다면, 이는 수출 주체인 한국의 전략적 선택권이 제한받게 되는 '외교적 강요'로 비칠 수 있다. 국회에서도 이를 "부당한 간섭"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중심의 원자력 수출 통제 구조 아래에서는, 결국 미국의 허가와 기술 통제를 피하기 힘든 한계가 따라붙는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APR1400 전략을 지속한다 해도, 이런 구조적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안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은 미국의 개입 정황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그는 한전의 사우디 원전 입찰 과정에 미국이 관여해 노형 변경과 공동수주를 요구했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원전 수출이 점점 불공정한 외교·통상 경쟁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체코 원전 협상 과정에서 불거졌던 '영구 노예계약' 논란을 언급하며, 이번 사우디 사안에서도 미국의 편파적인 개입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주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원전 수출 전략을 전면적으로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감사원 등 외부 기관을 통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의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다음과 같은 흐름이 예상된다. 우선 한국 정부는 일정 수준의 타협안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으로 주요 설계는 APR1400을 기본으로 하되 몇몇 시스템에는 미국 기술을 적용하거나, 특정 노형은 AP1000과 병행하는 '혼합형' 전략 등이 검토될 수 있다.  국제 무대에서는 '통상 주권'과 '경제 주권'이라는 프레임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안이 한국 정부의 외교·통상 전략을 다시 정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전 수출을 두고 경쟁하는 국가들 역시 이번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자체 노형을 가진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은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흔들릴 경우, 이를 외교 협상에서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사우디 원전 사업에서 자국 노형과 기업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국의 원전 수출 전략에도 변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수익성과 외교 주권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어려운 결정을 맞게 됐다. 이번 일을 계기로 '원전 수출 주권'을 둘러싼 국제적 경쟁과 외교적 역학 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치열해질 전망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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