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한국인의 도시락을 넘어 이제 세계인의 손에 들린 ‘한 줄의 예술’이 되었다. 과거에는 소풍이나 운동회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뉴욕의 푸드트럭, 파리의 한식당, 도쿄의 편의점, 런던의 마켓에서도 만날 수 있다. 김밥은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K-푸드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단순한 한 끼를 넘어 한국 문화의 미학과 정성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바다의 향을 품은 김은 글로벌 식재료
김밥의 핵심은 ‘김’이다. 얇고 향긋한 바다의 향을 품은 김은 한국의 해안가 마을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 온 식재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Seaweed)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각기 다른 이름과 방식으로 즐겨왔다.
일본에서는 김을 ‘노리(Nori)’라 부르며 스시나 온갖 간식에 쓰고, 중국 남부 해안에서는 ‘하이다이(海帶)’ 형태로 국물이나 볶음요리에 활용한다. 하와이에서는 참치와 김을 결합한 ‘스팸 무스비(Spam Musubi)’가 국민 간식이 되었고, 캐나다나 호주에서는 김을 건강식 슈퍼푸드로 인식해 샐러드나 수프 재료로 사용한다.
이처럼 바다에서 온 얇은 한 장의 김은 나라에 따라 용도는 달라도 ‘자연이 주는 순수한 풍미’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김밥은 이러한 세계인의 해조류 식문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세계 속 김밥의 변주
김밥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유연한 변화에 있다. 기본은 밥과 김이지만, 재료와 형태는 지역의 식습관에 따라 다채롭게 진화했다.
미국의 한식당에서는 아보카도, 훈제 연어, 스파이시 마요 소스를 넣은 ‘캘리포니아 김밥’이 인기다. 일본에서는 채식 인구가 많아 ‘야사이 김밥(채소 김밥)’이 등장했고, 태국이나 싱가포르에서는 매운 시라차 소스와 열대과일을 넣은 ‘퓨전 김밥’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유럽에서는 글루텐프리, 비건 열풍과 맞물려 현미나 퀴노아로 만든 ‘헬시 김밥’이 건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한국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김밥 전문점이 확산하면서 현지 입맛에 맞춘 메뉴가 끊임없이 탄생 중이다. 프랑스 파리의 한 K-푸드 카페에서는 트러플 오일을 뿌린 ‘트뤼플 김밥’이, 두바이에서는 할랄 재료로 만든 ‘할랄 김밥’이 인기를 끌고 있다. 김밥은 그야말로 국경 없는 음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 줄의 김밥, 문화를 잇다
김밥은 ‘모두가 함께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의 정(情)과 공동체 정신을 상징한다. 김 위에 밥을 고르게 펴고 각기 다른 색과 향의 재료를 나란히 올린 뒤 한 번에 말아내는 과정은 다양성을 품는 조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화의 철학’은 세계인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서로 다른 재료가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듯,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밥을 자르면 단면마다 색이 다르고, 각 재료의 향이 조화롭게 섞인다. 마치 세계 각지의 문화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모습과도 닮았다. 그래서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줄로 말하는 한국의 문화 언어다.
이제 김밥은 세계인의 도시락이자 한국 문화의 상징이다. 김이라는 바다의 선물에 밥과 반찬을 정성스럽게 싸 넣은 그 한 줄은, 단순한 한 끼를 넘어 한국인의 미감과 정성을 전한다.
김밥은 어느새 뉴욕의 직장인에게는 점심 샌드위치의 대안이 되고, 파리의 예술가에게는 창의적 영감의 소재가 되었으며, 동남아시아의 젊은 세대에게는 K-컬처의 상징이 되었다.
한 장의 김이 세계의 재료를 감싸듯, 김밥은 서로 다른 문화와 입맛을 아우르는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 그 한 줄을 자를 때마다 드러나는 다채로운 단면은, 바로 오늘의 다문화적 세계가 품은 조화와 공존의 풍경이 아닐까.
여성경제신문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foodnetwor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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