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지영 기자 | 보험사들이 금융당국의 기본자본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도입을 앞두고 자본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보험사의 자본이나 이익잉여금과 같은 기본자본만으로 지급여력비율(K-ICS)을 산출하는 제도로, 금리 하락과 기존 채권 차환 수요가 맞물리면서 국내 보험사들의 절반 이상이 당국의 기본자본비율 기준을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국내 보험사들의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 자본성증권 발행 확대만으론 이를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질적 자본 확보가 필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실질적 자본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하반기부터 기본자본 킥스를 새 규제 지표로 도입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 전반에 기존 보완자본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질적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기본자본 킥스는 보험사들의 기본자본 대비 지급여력 기준금액을 비교한 수치다. 보험사 가용자본은 손실흡수성에 따라 기본자본(Tier1, 자본금·이익잉여금 등)과 보완자본(Tier2, 후순위채권 등)으로 나뉜다.
하반기 시행 예정인 기본자본 킥스는 보험사의 자본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기타포괄손익과 같은 손실흡수력이 높은 항목만 반영한다.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처럼 부채 성격이 강한 보완자본은 제외되기 때문에 사실상 영업이익 확대나 증자 등을 통한 실적 개선 없이는 지표 개선이 어렵다.
금융당국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규제 수준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해외와 비슷한 50~70%에서 기준선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캐나다의 지급여력제도 라이캣(LICAT)이 50%를 규제 하한선으로 설정한 점을 참고 사례로 보고 있다.
다만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보험사들의 자본 확충 압박이 전사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기본자본비율 기준을 70%로 잡을 경우 국내 26개 생명·손해보험사 중 14개 보험사가 당국의 기준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푸본현대생명·KDB생명·IM라이프·롯데손해보험 등 4곳은 부채가 자본을 초과하는 마이너스(-) 상태며 IBK연금보험·ABL생명·DB생명·하나손해보험·흥국화재 등 5곳도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한화생명·현대해상·농협손해보험 등 대형사까지 70%를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보험사들은 기본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수익성을 높여 이익잉여금을 쌓거나, 증자나 기본자본으로 인정되는 자본성 증권을 발행해야 하고 있다. 이는 단기간 내 자본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내 보험사들의 자본성 증권 발행 규모는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발행액은 5조 22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1400억원) 대비 358.3%나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만 7조 5000억원이 발행돼 연간 발행액이 8조6550억원에 달할 정도다.
이는 2023년의 발행액(2조 4340억원)과 비교하면 255.6%나 증가한 수치다. 올해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경우에 연말까지 10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개별 보험사들의 대응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하나손보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구주주 배정방식으로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청약일은 오는 17일이며 신주 발행가액은 보통주 1주당 5000원으로 총 4000만주 규모다.
이번 조치는 기본자본 킥스 도입에 대응한 선제적 자본 확충이란 평가다. 하나손보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킥스비율은 141.3%로 이전 분기 대비 8.9%포인트(p)가 하락했다. 기본자본 킥스비율은 22.66%에 그친다. 기본자본 비율이 일정 수준을 밑돌 경우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될 수 있어, 추가 자본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 9월 이사회를 열고 최대 2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결의했다. 발행일과 최종 금액은 향후 시장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이번 발행은 11월 콜옵션 행사일이 도래하는 기존 800억원 채권 상환을 위한 조치가 주 목적으로 나머지 1200억원은 자본 확충과 건전성 제고, 여유자금 확보에 활용될 예정이다.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 2월에도 20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한 바 있다. 당시 흥국생명은 1000억원 수준 발행을 계획했으나 수요예측이 흥행하면서 증액을 결정했다.
흥국생명은 이번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서도 자본의 질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 기준 흥국생명의 킥스 비율 역시 경과조치 전 159.2%, 경과조치 후 208.3%로 모두 금융당국 권고치(130%)를 상회한다.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107.2%로, 업계가 예상하는 규제 수준(50~70%)을 크게 웃돈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6월 이후 총 2조60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음에도 킥스 비율이 하락했다. 무·저해지보험 확대에 따른 계리 가정 변경과 금리·보험 위험액 증가가 주효했다. 이에 현대해상은 지난 3월 8000억원 대규모의 후순위채를 추가 발행했다. 향후에는 자산 듀레이션(만기) 연장과 자본성 증권 추가 발행 등을 통해 지급여력비율 안정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현대해상은 자본 확충과 함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장기보험 중심 포트폴리오로 부채 평균 듀레이션이 긴 구조를 안고 있어, 금리 리스크가 낮은 연만기 보험 판매 비중을 늘리고 우량 장기채 매입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 같은 자본 보강과 체질 개선 조치에 힘입어, 현대해상의 킥스 비율은 2024년 말 157%에서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170.0%까지 상승했다.
한화생명은 3월 국내에서 6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데 이어, 6월에는 미화 10억달러(약 1조3638억원)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추가로 발행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동양생명도 지난 4월 5억달러(약 7200억원) 규모의 후순위 외화채를 발행했다.
이 같은 자본 확충 움직임은 제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최근 시장금리 하락 가능성이 커지면서 보험업계 전반에서 선제적인 자본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리 하락과 자본성증권 만기 도래, K-ICS 도입 등 각종 리스크가 겹치고 있다"며, "여기에 5년 콜옵션 채권 차환 수요와 K-ICS 비율 제고를 위한 가용자본 확보 필요까지 더해지면서 자본성증권 발행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자본성증권 발행 확대가 근본적 해법이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보험업계가 발행한 자본성증권의 평균 금리는 5.6%로, 연간 이자 부담만 약 485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금리 하락으로 조달 비용이 다소 낮아졌다고 하지만 발행 규모가 확대되면서 총 이자 부담은 오히려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생명보험사는 금리 민감도가 높아, 부채 증가와 함께 킥스 비율 하락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보험업게는 제도 적응 기간 부족을 문제 삼고 있다. 기본자본 규제의 유예와 보완을 요구하고 있는 데 이는 금리와 자본 구조 문제로 인해 단기적 대응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 중견 손보사 관계자는 "기본자본비율이 낮은 회사들은 만기 도래 시 상환을 연기하거나 신규 발행으로 교체해야 하지만 시장금리가 높아 조달 부담이 크다"며, "단순히 자본성 증권 중심의 양적 확충에 그치지 않고 영구적이고 손실흡수력이 높은 질적 자본으로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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