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있는 자본주의
1994년 롯데호텔에서 이호선 OKTA(세계한인무역협회) 회장님과 조찬 하며 만난 일본 야호한그룹 와다가즈오 회장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지금은 야호안 그룹도 부도가 나서 공중분해 됐다지만 당시에는 일본 본사를 홍콩으로 옮기는 등 아시아 유통 재벌치고는 사세가 꽤 큰 편이었다. 1994년에 만났을 때는 유통망을 중국으로 막 확장할 때였다. 1989년 천안문사태로 중국에 투자했던 서방 자본이 탈출할 때 거꾸로 홍콩에 모든 재산을 투자하면서 장강그룹 리카싱 회장을 만난 일화와 그 인연으로 대륙에 진출하게 된 계기등 흥미진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만날 당시는 상해 주변의 젊은 인구 3억 명을 겨냥해 집중공략 하려고 대규모 투자를 시도할 때였다. 이때 가슴에 와닿았던 말은“야호안그룹은 해외 투자 때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보고 들어간다”라는 것이다. “남미의 브라질에 진출했다가 정치적 불안으로 큰 실패를 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라는 설명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자신을 돌아봤다. 과연 나는 1994년도에 북한하고 무역을 시작할 때 그런 정치적 관점을 고려했던가? 아쉽게도 아닌 것 같다. 즉 자본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민족애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 같은 자본주의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손익계산서로는 표시 할 수 없는‘심장 있는 자본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래야만 자본이란 장애물을 뛰어넘어 북한과 모든면에서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무생물장사에서 생물장사로
모래 수입을 접고 조개 수입
당시 나는 홈쇼핑을 접고 사업을 다각화를 해보려다 또 쫄딱 망해 무일푼이 됐다. 때마침 인천에서 대형관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던 고향 선배가 인천의 한 모래업체를 소개하면서 북한에서 모래를 수입하는 일을 해보라고 권했다.
북측과 근 1년 동안 씨름하여 계약 직전까지 갔는데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50억원 정도 하는 모래배가 북한으로 올라갔다가 억류라도 되면 동원할 수단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되는 일 없이 시간만 까먹고 있는데 보세창고를 운영하던 또 다른 고향 선배가 자기가 자금을 댈 테니 북한김치를 홈쇼핑 통해서 팔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북한에다 샘플을 만들어 보내보라 했다. 단동 따이공을 통해 인천으로 들어온 북한김치를 먹어 보려고 설렁탕집에 가서 샘플을 풀었는데 그 속에서 난데없이 조개껍데기가 툭 튀어나왔다.
김치는 먹어 보니 우리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아 포기했는데 그 조개껍데기가 왜 따라왔는지 궁금해서 탁송한 중국동포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북한에서 조개 수입을 해 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보내온 조개껍데기는 여기서는‘개조개’라 부르는 흔한 조개였다.
그게 2004년 일이다. 조개 수입도 괜찮겠다 싶어 북측 파트너에게 제안을 넣었는데 의외로“나는 못 하겠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수산물을 하다 보면 서로의 우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저 말의 배경을 이해할 수 없어 몹시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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