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무부는 14일 한국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해 거래 금지 제재를 전격 단행했다.
이는 단순한 미국의 파트너 기업 제재를 넘어선,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움직임이다. 미·중간 서로 상대국 선박에 징벌적 입항 수수료 부과를 개시한 바로 그날 실행됐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표적은 명확했다.
한화오션은 한국의 자본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국 해양 산업 기반을 재활성화하려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이니셔티브의 상징적 선봉장이다. 따라서 이 보복 행위는 한국, 일본 및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이다. 즉, 워싱턴의 전략적 산업 계획에 참여하면 베이징이 부과하는 징벌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신호다.
'부두에서의 주고받기(Tit-for-Tat)'
미·중간 항만 접근권 충돌서 촉발
중국의 기업 제재를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이에 앞선 항만 접근권을 둘러싼 충돌이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의 국가 주도 비시장적 관행이 세계 해양 및 조선업 분야를 불공정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 무역법 301조 조사를 완료한 후 , 미국은 중국 운영 또는 중국 소유 선박에 대해 순톤당 50달러(약 7만1700원)의 특별 항만 서비스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 수수료는 매년 인상되어 2028년 4월까지 140달러(약 20만원)에 이를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중국 교통운수부 역시 같은 날 미국 소유 또는 운영 선박에 대해 순톤당 400위안(약 80달러·약 11만5000원)의 특별 입항 수수료를 도입하며 보복에 나섰으며, 이 역시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될 계획이다.
왜 한화인가? 상징의 논리
이러한 미·중 간 다툼 속에서, 중국은 상징적으로 중요한 한화 필리 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Inc.)를 포함한 한화오션의 미국 법인들을 직접적인 표적으로 삼았다. 그 근거는 이 회사가 워싱턴의 전략적 의제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MASGA의 최전선: 한화는 2024년 말 필라델피아 기반 조선소를 약 1억 달러(약 1435억원)에 인수했다. 더구나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의 고위급 방문 직후 미국 조선업에 50억 달러(약 7조1755억원)의 야심찬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조선소는 한국 정부가 교착 상태에 있는 한미 관세 협상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외교 카드로 보고 있다.
국방 산업 기반(DIB) 통합: 한화의 참여는 상업용 선박을 넘어선다. 이 회사는 이미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 및 정비(MRO) 계약을 확보했다. 나아가 한화 디펜스 USA는 최근 미 해군 소장 출신인 톰 앤더슨(前 해군 해상 시스템 사령부 지휘관 대행)을 미국 조선 사업 담당 사장으로 영입했다. 이 움직임은 한화가 미국 해양 국방산업 기반(DIB)에 깊숙이 통합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주며, 중국 관영 매체는 이를 "위험한 도박"으로 규정하며 오랫동안 경계해 왔다.
시진핑의 관점에서 볼 때, 한화의 활동(고위급 정치적 지지, 대규모 투자 약속, 미 해군 전문가 영입)은 중국의 해양 지배력에 맞서려는 워싱턴 전략임을 확증했다.
중국 상무부가 한화오션 미국 법인 제재를 위해 언급한 법적 틀은 2021년에 만든 중국의 '반(反)외국 제재법(AFSL)'이다.
중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해당 5개 자회사가 "미국 정부의 무역법 301조 조사 활동에 협조, 지지"함으로써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해쳤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 자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함으로써 , 중국은 동맹국 기업일지라도 미국의 조사에 협력하는 모든 주체를 처벌할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그러나 한화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중국의 국가 안보나 발전 이익에 어떤 실질적인 해를 끼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베이징의 공식 발표에서는 없다.이는 중국의 AFSL 제재법이 사법적 도구가 아닌 전략적 억제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무기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정치적 신호 보내기 전략
이 조치는 중국이 과거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에 보복하여 미국 방위산업체(록히드 마틴, 레이시언 등)와 그 경영진을 제재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이들 미국 국방 기업은 중국 본토 시장에서 사업 비중이 미미하여 제재의 주요 효과는 경제적 피해가 아닌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 전달이었다.
한화오션 제재 역시 이 전략을 따른것으로 볼 수 있다. 한화오션의 5개 미국 법인은 중국 본토에서 상업적 거래가 거의 없기 때문에 , 즉각적인 경제적 타격은 제한적이다.
중국의 진정한 목표는 전략적이다. 즉, 미국 전략 산업에 깊이 통합을 고려하는 모든 한국 및 동맹국 기업에게 지정학적 위험을 명백하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협력자를 처벌함으로써, 베이징은 중국 시장 접근을 위해서는 워싱턴과의 전략적 '비협력'을 전제 조건으로 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재명 정부 '전략적 딜레마'에 빠져
그간 써왔던 '전략적 모호성'의 종식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한화오션의 주가는 즉시 폭락하여 장중 5.8%에서 8% 이상 하락 마감했다. 이러한 하락은 한국의 방위 및 전략 제조 기업에 부과되는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을 나타낸다.
더 깊은 우려는 간접적인 위험에 있다.
제재 대상인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이 중국 내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지만, 모회사는 중국 산둥성에서 선박 부품 모듈 제조 공장을 운영하며 이를 한국 조선소에 공급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향후 제재 대상을 한국 본사로 확대하거나, 중국 국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한화와의 거래를 회피하는 '자발적 제재(self-sanctioning)'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다.
또 한화가 방위산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희토류와 같은 전략 소재의 공급망을 무기화할 경우 치명적인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조치를 한화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한국 조선업계 전체의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신호로 폭넓게 해석한다. 경쟁사인 HD현대 역시 미국 조선소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이징은 HD현대가 다음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명확하고 확대된 위험 신호를 보냈다.
더 나아가, 중국의 강압적인 조치는 조선업을 넘어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의 공급망 복원력 협력을 심화하고 있는 다른 전략 산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중국의 징벌적 조치는 한국이 운신의 폭을 좁힐 수밖에 없음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이 움직임은 한국의 오랜 정책이었던 최대 안보 동맹(미국)과 최대 교역 파트너(중국)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베이징은 핵심 전략 산업이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중립이 허용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이재명 정부의 지정학적 셈법은 냉혹하다.
중국의 경제적 보복 위험이 강화되는 가운데서도, 미국 및 동맹국과의 국방 산업 기반(DIB) 및 전략 공급망 통합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압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한국이 현 시대의 결정적인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전략적 선택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최후통첩이다.
결국 다가오는 APEC 정상회의에서 이 충돌을 중재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이번 전략적 갈등을 봉합할지, 아니면 더 광범위한 확전을 향해 나아갈지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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