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한민하 기자] 기후 변화가 패션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급격히 짧아진 봄·가을과 점점 길어지고 있는 여름·겨울 시즌의 양극화로 기존 계절 의류 대신 냉감·흡습·경량 등 기능성 소재를 앞세운 전략이 주요해진 상황이다. 이처럼 패션업계의 전통적인 ‘S·S’, ‘F·W’ 시즌제가 무너지면서 디자인보다 소재·기술이 브랜드 경쟁력을 가르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14일 기상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장마 시작이 예년보다 빨라지는 등 계절이 불규칙해진 가운데 여름과 겨울이 길어졌으며,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온난화된 겨울이 반복되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 역시 우리나라의 기후가 실질적으로 온대기후에서 아열대기후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아열대기후란 월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기간이 8개월 이상 지속되는 기후대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11월 초~중순까지 10도 이상의 기후가 이어지며 이전까지는 겨울 중심의 나라였다면 이제는 여름이 4~5개월로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이같이 예측이 어려운 기후 속에서 패션가의 고민은 깊어졌다. 국내 주요 패션 대기업들은 불규칙한 날씨에 직격탄을 맞으며 올해 2분기 기준 대부분 기업이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것은 물로 관련 사업 계획을 전부 갈아치우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지난 8월 한섬은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7억원이라고 공시한 바 있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82% 감소한 규모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했으며 삼성물산 패션부문 역시 영업이익이 36% 감소했다. 매출 또한 일제히 하락하며 업계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좋지 않은 경기 상황과 불규칙한 날씨가 맞물려 의류 부문 매출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컬렉션을 뚜렷하게 나누기 어려워지면서 예측을 기반한 시즌 기획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이상기후로 인해 짧아진 봄과 가을은 간절기 아이템의 퇴장을 불렀다. 트렌치코트·얇은 니트류의 판매 기간은 줄어들고 재고 부담은 늘어 수익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시즌은 길어졌지만 포근해진 겨울 날씨는 롱패딩, 코트 등 고가 아우터의 판매는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업계의 새 성장동력 찾기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계절’에 따른 기획이 난항을 겪으며 산업의 구조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 속 패션 업계는 기능성 소재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길어진 여름을 겨냥해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냉감·흡습속건·UV 차단·통기성 강화 등 체감형 기술을 적용한 ‘롱 서머(Long Summer)’ 라인을 확대하는 등 실용성을 강화한 소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냉감 기술의 고도화와 경량화 소재의 의류들이 잇따라 출시되며 셔츠·팬츠 등 일상복에도 냉감 및 통풍 소재를 접목시키는 등 기능성 의류가 아웃도어 중심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또 ‘시즌리스’, ‘웨더리스’ 를 내세워 봄·가을이 짧아진 소비 시점에 맞춰 한 벌로 여러 계절을 커버할 수 있는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계절 중심의 상품 기획 대신 날씨 변화에 즉각 대응하는 패션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불규칙한 강수 패턴이 이어지면서 ‘레인부츠’·‘레인코트’ 등 우천형 상품군의 출시도 확대되고 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지난 5월 우천 관련 상품의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밝히며 잦은 비 예보와 빠른 장마에 발수·방수 기능이 있는 실용적인 패션 아이템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국내 패션 기업들은 예측 불가능한 국내 기후를 넘어 다양한 기후권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기술을 접목시킨 의류를 수출하며 활로를 찾고 있다. 동남아·북유럽·북미 등 다양한 기후권을 겨냥한 기능성 의류 수출이 확대되는 추세다. 기능성 소재와 기술의 글로벌 진출이 침체된 K패션 산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기능성 의류의 경우 높은 단가와 생산비 부담으로 중견기업 이상 브랜드 중심의 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생산 설비 제약 등 비용적 부담이 따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국패션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패션업계가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가 기후 예측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당초 겨울이 추울 것으로 예상돼 겨울 상품 물량을 확대했지만 11월 초까지 포근한 날씨가 이어져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봄·가을이 짧아지며 간절기 의류 판매는 이전보다 감소했고 길어진 여름에 기능성 소재를 접목한 의류의 출시가 이어지기도 했다”며 “다만 기능성 소재의 의류는 단가가 높아 대기업 중심으로 마케팅이 가능한 반면 중소·디자이너 브랜드는 원단 수급과 생산 구조상 물량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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