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화재보험(이하 현대해상)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오너 3세 정경선 전무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조직 개편과 외부 인재 영입 등에 속도를 내며 세대교체를 주도한 지 불과 1년 만에 실적 부진과 고객 민원 증가, 브랜드 평판 약화 등 주요 경영 지표가 동시에 흔들리는 악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특히 브랜드 평판 부문에서 장기간 1위를 유지해온 현대해상의 지위마저 흔들릴 기미를 보이면서 '정경선 리더십'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실적·브랜드평판 떨어지고 고객 민원 늘고…시험대 오른 보험명가 3세 경영
손보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지난해 1월 조직개편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한 부문급 임원 기구인 지속가능실을 업계 최초로 신설했다. 해당 조직의 수장(최고지속가능책임자, CSO)엔 정몽윤 회장의 장남 정경선 전무를 선임했다. 1986년생인 정 전무는 타 보험사 오너 3세들이 실무 경험을 거친 뒤 임원으로 승진하는 통상적 경로와 달리 전무 직급으로 곧장 입사해 현대해상 최연소 임원 타이틀까지 거머쥔 장본인이다.
정 전무는 입사 직후 '젊은 조직'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올해 초 단행한 인사에선 부문·본부장급 임원 자리에 외부 출신 인사들을 직접 발탁해 채우며 세대교체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도 했다. 기술지원부문장 김택수 전무(전 카카오 CPO), 디지털전략본부장 김성재(전 SK하이닉스), 브랜드전략본부장 주준형(전 SK수펙스협의회), 정보보호책임자 서홍원(전 넷마블·엔씨소프트), 지속가능실 강명관 상무(컨설팅 출신) 등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1970~1980년대생으로 세대교체 기조에 부합했지만 대부분 보험업 경력이 없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비슷한 시기 창사 이래 최연소 CEO인 1969년생 이석현 전무를 현대해상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대해상은 지난 7월에 지속가능실을 본부급 조직인 '지속가능본부'로 격상하고 중장기 경영 전략에 맞춰 일부 부서 명칭을 변경하는 등 또 한 번의 조직 쇄신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지속가능본부장에는 기존 지속가능실 실장을 역임하던 강명관 상무를 승진 배치했다.
그런데 최근 현대해상 안팎에선 정 전무 주도의 조직 쇄신 작업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정 전무 리더십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불거져 나오면서 본격적인 3세 경영의 사전 정제작업 격인 조직쇄신 자체에도 의문 부호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실적 부진과 고객 민원 증가, 이에 따른 브랜드 평판 악화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현대해상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2032억원으로 전년 동기(4773억원) 대비 57.5% 급감했다. 2분기에도 순이익은 247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4% 감소했다.
올해 보험업계 전반이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현대해상의 실적 하락 폭은 주요 경쟁사들과 비교해 유독 두드러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일례로 경쟁사인 KB손해보험은 올해 2분기 당기순이익은 24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6% 감소에 그쳤다. 같은 기간 DB손해보험의 당기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14.9% 감소한 4599억원을 나타냈다. 삼성화재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638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현대해상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민원 건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현대해상의 올해 2분기 환산 민원 건수(보유 계약 10만건당)는 8.21건으로 1분기(7.43건) 대비 10.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공시된 18개 손해보험사 중 흥국화재(1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증가율만 놓고 봤을 땐 민원 건수가 가장 많았던 메리츠화재(4.37%) 보다 높았다. 반면 경쟁사인 KB손해보험(7.3건), DB손해보험(6.35건), 삼성화재(5.06건) 등은 민원 건수과 증가율 모두 현대해상에 비해 낮았다.
소비자 신뢰와 직결된 민원 건수가 늘면서 브랜드 이미지에도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 따르면 그동안 현대해상의 독주 체제가 유지돼 온 주요 손해보험사 브랜드 평가 순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해상은 올해 6월 321만점, 7월 317만점, 8월 329만점, 9월 321만점 등을 기록하며 업계 1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2위인 KB손해보험이 6월 240만점에서 9월 312만점까지 빠르게 점수를 끌어올리면서 그 격차가 한 자릿수 수준까지 좁혀졌다.
손보업계 안팎에선 본업에서의 부진이 계속될 경우 외부 인사 중심의 조직 개편 등의 세대교체 작업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대교체 작업 자체가 3세 경영을 위한 사전 정제작업 성격이 짙은데 가장 중요한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경선 전무 체제는 빠른 인사 단행과 과감한 개편으로 신선함을 주긴 했지만 주요 지표가 동시에 악화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신호다"며 "세대교체를 통해 조직을 장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경영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대교체와 외부 수혈 자체는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지만 보험업처럼 고객 신뢰와 장기적 리스크 관리가 핵심인 산업에서는 보여주기식의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안정성과 내재된 전문성을 우선해야 한다"며 "특히 최근 민원 증가와 브랜드 평판 약화 흐름을 감안하면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소비자 중심의 경영 철학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대해상 관계자는 "세대교체가 성급하게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조직 개편과 외부 인재 영입은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잔액 기준으로 볼 때 현대해상은 타사 대비 여전히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당기순이익 하락만으로 전체 실적을 평가하기보다는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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