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정부가 국민 안전 강화를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9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연구 성과가 1년 넘게 '서랍 속 기술'로 남아 있는 셈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안산시을)은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국민 안전을 위한 AI 기술이 개발 이후 실사용 단계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부처 간 협업 부재로 예산 낭비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과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과기부는 지난 2022년부터 '부처협업 기반 AI 확산사업'을 통해 재난·재해, 환경, 교통 등 국민 안전 분야의 인공지능 기술 27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연도별로는 2022년 2건, 2023년 5건, 올해 10건, 내년에도 10건이 예정돼 있다. 과제별 평균 개발 기간은 2~3년으로, 2022년 선정된 2건의 사업은 이미 지난해 개발이 완료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AI 기반 산림해충 방제지원 시스템'과 'AI 융합 유해화학물질 판독시스템 구축' 사업이다. 각각 54억 원과 42억 원이 투입돼 총 96억원이 쓰였다.
'AI 기반 산림해충 방제지원 시스템'은 소나무재선충병 발생 지역과 확산 속도를 인공지능이 실시간 분석해 방제 전략을 세우는 솔루션이다. 'AI 융합 유해화학물질 판독시스템'은 CCTV 영상과 소방청의 화학물질 데이터를 분석해 재난 상황을 조기 판별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두 사업 모두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다. 개발을 주도한 과기부와 실사용 기관인 산림청, 소방청 간 협업이 원활하지 않아, 완성된 기술이 현장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서류상 완료'로만 남아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현 의원은 "AI 기술이 단순한 연구 성과로 끝나선 안 된다"며 "재난 예측과 대응, 유해물질 감지 등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기부가 개발만 하고 손을 놓는다면 예산 낭비이자 책임 회피"라며 "수요 부처와 민간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과기부는 '사업 완료 후 해당 기관에서 활용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각 부처의 도입 인프라 구축과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종 활용 여부는 수요 기관이 결정할 문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런 태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AI 기술이 국민 안전 현장에 적용되지 못하면 100억 가까운 예산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AI 기본사회' 실현을 위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기술 확산 단계까지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국감에서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적에 공감한다"며 "조만간 구성될 '과학기술·AI 장관협의회'에서 관계 부처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안전을 위한 AI 기술이 현장과 유리된 채 머물러 있는 동안, 매년 반복되는 산불·화학물질 사고에 대한 대응력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기술은 이미 충분히 현장 적용이 가능한 수준"이라며 "부처 간 이해관계를 넘어 실질적인 '적용 모델'을 만들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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