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정부가 내년부터 간병비 본인부담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해 2030년까지 본인부담률을 3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오랜 기간 가족이 짊어져온 간병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지만, 현장의 여건과 재정 여력을 고려할 때 제도의 안착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2일 ‘의료중심 요양병원 혁신 및 간병 급여화 추진방향’ 공청회에서 5년간 약 6조5000억원을 투입해 간병비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내년 하반기부터 중증 환자를 돌보는 ‘의료중심 요양병원’ 200곳을 지정하고, 2030년까지 5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현재 100% 개인이 부담하는 간병비를 30% 수준으로 낮춘다는 방침이다.
간병이 무너뜨린 삶…사적 부담의 공적 전환
간병비는 이미 의료비를 넘어선 사회문제가 됐다. 평균 월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용은 국민 다수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직장을 포기하고 가족이 직접 돌보거나, 비용 문제로 환자를 조기 퇴원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부 가정은 장기 간병 부담으로 빚을 내거나, 생활비를 줄여 병원비에 충당한다.
이 같은 현실은 가족 내 돌봄 구조가 급속히 붕괴된 결과다. 과거에는 가족이 곁을 지키는 ‘비공식 간병’이 일반적이었다. 농경사회나 대가족 중심이던 시기에는 돌봄의 노동이 가족 내부에서 해결됐다. 하지만 고령화와 도시화, 핵가족화가 맞물리면서 간병은 시장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결국 ‘간병의 상품화’가 진행되면서 비용이 오르고, 공적 지원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셈이다.
복지부가 추진하는 ‘의료중심 요양병원’ 제도는 이러한 간병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다. 의료적 필요도가 높은 중증 환자를 일정 비율 이상 돌보는 병원을 지정해 간병비 지원을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내년 200곳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500곳을 선정할 계획이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장석용 교수는 “간병비 급여화는 병원이 제공해야 할 돌봄 기능을 공공화하는 전이 단계로 이해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가족이 사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하는 구조는 오래가기 어렵다. 병원이 간병인을 직접 고용하거나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간병의 질도 높아지고 제도도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난·지역 격차·재정 악화…정착까지 과제 ‘산적’
의료계는 제도 정착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료인력 확보와 간병서비스 질 관리, 병상 기준 충족 등 병원마다 여건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간병인력 부족은 심각한 문제다. 고강도·저임금 노동인 간병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가 일반적이고, 근로계약도 불안정하다. 수도권 대형병원에는 지원자가 몰리지만, 지방 요양병원은 구인난이 지속된다. 복지부는 외국인 인력 활용을 검토 중이나 자격·언어·근로환경 문제로 즉각적 해결은 어렵다는 평가다.
간병서비스 질의 편차와 지역 간 인프라 격차도 제도 정착의 현실적 장벽으로 꼽힌다.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되는 간병서비스는 표준화된 관리 체계가 부족해 병원마다 서비스 수준 차이가 크다. 복지부가 환자 상태를 평가해 지원 대상을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행정 부담과 평가 기준의 주관성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수도권은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간병 체계가 비교적 확립돼 있으나, 지방은 병상은 많아도 인력과 시설이 부족해 지원의 질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정책 실현의 열쇠는 건강보험 재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의료개혁과 비상진료대책 시행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적자로 전환됐으며,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향후 10년간 누적 적자액은 현행 유지 대비 32조2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요양비·간병비 지원 2단계 시범사업에는 국고가 아닌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된다. 내년 3700억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총 6조5000억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같은 시기 논의 중인 상병수당 제도까지 건강보험 재정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 재정 악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보건학과 교수는 “간병비 급여화는 사회적 요구가 분명한 정책이지만,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장기 유지가 어렵다”며 “정책 도입 속도를 조절하면서 건강보험 재정 구조를 병행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행정 전문가는 “국민 부담을 줄이려다 건강보험이 무너지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며 “국고 지원 확대, 민간보험 연계, 지역 간 협력체계 등 복합적 재정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는 오는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추진 방향을 보고하고, 전문가 자문단 의견을 반영한 최종안을 12월에 확정할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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