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여전히 외국인 고객의 '여권 사본'만으로 회선을 개통해주는 허술한 본인확인 절차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통신사는 심지어 해외 현지에서 외국인 송출업체를 통해 여권 사본을 미리 수집해 입국 전 '후불 유심'을 불법 개통해주는 영업을 벌여온 정황까지 포착됐다. 국회에서는 "이 같은 영업 관행이 외국인 명의 대포폰과 보이스피싱 범죄의 온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정부의 전면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13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이통 3사가 외국인 회선 개통 시 사실상 여권 사본만으로 개통을 허용하고 있다"며 "후불 상품 개통 과정에서 본인확인 절차가 유명무실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주요 통신사 모두 외국인 개통 기준을 다르게 운영하고 있으며, 상당수 통신사가 여권 사본만으로도 후불 요금제 가입을 승인하고 있었다. 예컨대 KT와 LG유플러스는 특정 비자(E7, E9, D2, D4)를 소지한 외국인에 한해 '여권으로 후불 개통'을 허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예외 조항이 불법 유통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베트남과 네팔 등지의 취업·유학 알선업체가 현지에서 외국인 여권 사본을 대량 수집해 한국 입국 전 '후불 유심'을 불법 개통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외국인이 입국하자마자 자동으로 회선이 활성화되는 구조다. 취업 알선기관이 통신사와 제휴해 유심을 미리 보내주는 방식으로, 본인 대면 확인 절차는 완전히 생략된다. 일부 통신사 안내자료에는 "입국 전 여권으로만 신청 가능, 입국 즉시 개통"이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었다.
이런 허점을 노린 범죄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8천억 원에 달하며, 연간 환산 시 1조 3천억 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외국인 명의 대포폰이 이 중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에만 적발된 외국인 명의 대포폰은 7만 건을 넘었다. 피해액은 전년 대비 195%, 발생 건수는 114% 증가했다.
통신사 내부에서도 불법·편법 영업을 부추기는 구조가 문제로 지목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후불 회선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라 통신사들이 외국인 고객을 '신규 고객군'으로 삼고 있다"며 "가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여권 사본만으로 후불 개통을 유도하고, 심지어 해외에서부터 유치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내국인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진위확인이 가능한 신분증을 신분증스캐너로 검사해야 하지만, 외국인은 여권 스캔만으로 개통이 가능하다. 여권 진위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판매처의 '눈대중 확인'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결국, 통신사의 부정가입방지시스템이 외국인 대상 회선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65만 명으로 4년 새 30% 이상 늘었다. 장기 체류자만 200만 명이 넘는 만큼 외국인 대상 통신서비스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 사본 개통의 허점을 방치하면 대포폰 조직의 신규 창구로 악용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형두 의원은 "여권 사본 개통은 명백한 제도 허점이자 범죄 악용의 통로"라며 "정부가 외국인 회선 개통 시 본인확인 기준을 내국인 수준으로 강화하고, 부정가입방지시스템을 출입국관리소 등 관계기관과 연계해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외국인 신분증 사본 판별 솔루션 개발, 외국인 다량 개통 유통점 전수조사, 선불·후불 유심 연장 시 본인인증 절차 강화 등 실효성 있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며 "통신사 역시 가입자 확보 경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