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 산업 혁신 동력을 책임지는 중견·중소·스타트업·벤처기업은 한국 산업의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국내 산업 혁신 지표를 형성하고 경제 역동성 엔진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리스크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 국내 시각특수효과 콘텐츠 시장을 이끄는 전문 기업 덱스터스튜디오가 ‘어쩔수가없다’로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근 개봉해 베니스 및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내년 제9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VFX(시각특수효과) 부문에 덱스터스튜디오가 기술 참여하며 그 독보적인 기술력을 재차 입증한 것이다.
덱스터스튜디오의 VFX 참여는 기술 지원뿐 아니라 영화의 미장센과 정서적 완성을 지원하는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의미를 지닌다. 덱스터는 앞서 웹툰 원작 시리즈 ‘신과함께’, 재난 블록버스터 ‘백두산’, 한국형 우주 SF 가능성을 연 ‘승리호’, ‘더 문’ 등 대형 스케일 작품과 실화 기반 시대극 ‘모가디슈’,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소화력을 증명해왔다.
덱스터는 ‘어쩔수가없다’를 통해 기술이 시각적 효과를 넘어 장면과 장면 사이 정서적 연결을 돕고 메시지 전달을 위한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다. 눈에 띄는 스펙터클을 만드는 것을 넘어 감독의 섬세한 연출 의도까지 구현하는 프리미엄 스튜디오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또한 덱스터의 기술력이 상업적 블록버스터뿐 아니라 예술적 완성도가 중시되는 작품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재 아시아 최대 규모 종합 콘텐츠 스튜디오를 지향하는 덱스터스튜디오의 역사는 2011년 설립된 전신 '덱스터 디지털'에서 시작된다.
덱스터의 창립은 한국 VFX 산업의 기술 자립이라는 명확한 목표에서 비롯됐다. 창립자이자 현 대표이사인 김용화 감독은 영화 ‘미스터 고’ 제작 당시 고릴라 CG 제작에 할리우드가 500억에서 8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자 이에 맞서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자체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다. 덱스터는 자비 125억원을 투입해 고릴라 CG 제작에 성공했으며 방대한 용량의 털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독자 기술인 'ZelosFur'(현재 ZENN Fur의 모태)를 개발했다. 비록 ‘미스터 고’ 자체는 흥행에 실패했으나 할리우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평가받은 CG 기술력 덕분에 덱스터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이 기술력은 한국 CG 스튜디오 최초로 DigiPro 2013에서 발표될 정도로 독창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대규모 투자 유치와 2015년 코스닥 기술성 평가 상장의 근본적인 기반이 됐다. 상업적 성과를 우선하기보다 내부 R&D(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 외부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덱스터의 핵심 경영 DNA가 확립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덱스터스튜디오의 차별화된 강점은 단순한 VFX 외주 기업을 넘어 콘텐츠 기획, 제작, 후반 작업을 아우르는 '원스톱 종합 콘텐츠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데 있다. 덱스터는 핵심 사업인 VFX 외에도 DI(디지털 색보정), 사운드 디자인 및 믹싱 등 후반 작업 전반을 내재화해 제공한다.
이런 수직 통합 전략의 정점은 2017년 사운드 믹싱 전문 업체 라이브톤을 인수한 것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시각 효과, 색보정, 음향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지만 각기 다른 업체가 담당할 경우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인해 일정 지연 및 품질 저하라는 제작 위험(Coordination Risk)이 발생하기 쉽다. 덱스터는 이 3가지 핵심 요소를 내부에서 통합함으로써 프로젝트 진행 통제력을 극대화했다.
실제 덱스터가 DI와 사운드 작업까지 모두 담당했던 ‘기생충’과 같은 작품은 미세한 조정이 필요한 예술적 연출 의도까지 기술과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었다. 이 통합 시스템은 국내외 제작사들에게 안정적인 품질과 효율성을 보장하는 핵심 경쟁 우위로 작용하며 덱스터를 글로벌 파트너로서 선호하게 만드는 배경이 됐다.
덱스터스튜디오는 현재 약 330명 전문 인력 중 200여명의 VFX 아티스트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 콘텐츠 시장에서 최고 수준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적 기반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 스튜디오로 평가된다.
덱스터는 미래 기술인 버추얼 프로덕션(VP) 분야를 선도하며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덱스터스튜디오는 VP 기술 핵심인 인카메라 시각효과(ICVFX) 분야에서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했다. 올해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제작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오리지널 시리즈 ‘버터플라이’의 ICVFX 부문에 기술 참여한 것이다. ICVFX는 실시간으로 렌더링되는 가상 배경을 LED 디스플레이로 구현하고 카메라 움직임에 연동해 실제 배우의 연기와 동시에 촬영하는 혁신 기법이다. 이는 제작 기간을 단축하고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다.
덱스터스튜디오는 ICVFX 기술로 할리우드 프로젝트를 수행한 유일한 국내 스튜디오다. 이는 덱스터가 한국을 넘어 글로벌 VP 시장에서 '최초 공급자'로서의 지위와 프리미엄 가격 결정력을 선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덱스터는 촬영 기획 단계부터 사전 시각화, 솔루션 도출, 2D 플레이트 제작, LED 스테이지 촬영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며 차별화된 역량을 선보였다.
덱스터스튜디오의 지속 가능한 기술 경쟁력은 끊임없는 R&D 투자와 자체적인 기술 개발에서 비롯된다. 덱스터는 자체 R&D를 통해 최대 80개 이상 맞춤형 도구들을 개발해왔으며 이는 프로젝트의 까다로운 기술적 요구 사항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일례로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품인 '유유백서'의 공중 궁전과 같은 광활하고 무거운 어셋 데이터를 웅장하게 표현하는 작업 역시 이런 R&D 기반 역량 덕분에 가능했다.
최근 콘텐츠 업계의 화두인 AI 기술 접목 또한 덱스터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 덱스터는 딥러닝 기반 디에이징(De-aging) 및 페이스 스왑 기술을 활용해 OTT 등 뉴미디어 콘텐츠의 고도화된 비주얼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런 기술 혁신을 통해 ‘오징어 게임’과 같은 글로벌 흥행작과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기술적 차별성을 입증했다.
업계 전문가는 “덱스터는 AI와 기술 발전 시대에도 '창의성이 여전히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기본 중심'이라고 강조한다. 기술을 단순 비용 절감 도구가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창의성을 극대화하고 복잡한 예술적 비전을 구현하는 촉매제로 활용한다는 명확한 전략적 의지”라며 “이런 ‘기술력’과 ‘창의성’의 이중 전략이야말로 덱스터가 아시아 VFX 시장의 왕좌를 지키며 글로벌 미장센을 지배하는 핵심 동력”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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