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류정호 기자 | 한국 국적의 사업가 J씨는 과거 축구 에이전시 대표로 활동한다며 대한축구협회를 공개 저격한 바 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에 대한 비판 여론과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이 겹치던 시기라 그의 폭로는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외국인 감독을 협회에 추천했지만,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협회를 성토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허점이 적지 않았다. J씨가 거론한 외국인 감독과 관련해 정식 협상 위임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본인 역시 이를 확보하지 못했다. 사실상 대리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협회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게다가 그가 내세운 ‘정의로운 에이전트’의 얼굴 뒤에는 유럽 현지에서의 임금체불과 청년 착취 정황이 숨어 있었다. 이에 본지는 지난 5월부터 J씨에 대한 취재를 이어왔다.
◆“일했지만 월급은 없었다”… 공식 확인으로 드러난 불법 구조
헝가리 국적의 피해자 A씨는 J씨 회사의 폴란드 지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그는 수개월 치 급여가 체불된 상태에서도 프로젝트를 이끌고 회사의 디자인 자산을 구축했다. 하지만 J씨와의 대화는 갈등으로 치달았다. A씨는 본지에 “급여 지급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냐’는 말을 듣고 큰 모욕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A씨 외에도 다수의 직원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일부는 구두 약속만으로 고용됐고,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조차 사회보험 신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폴란드 연금공단(ZUS)의 공식 회신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입수한 ZUS 서류에는 “J씨 명의의 사회보험 등록 및 납부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즉, 직원들은 법적으로 근로자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불법적으로 고용됐던 셈이다.
피해 규모도 작지 않다. 최초 제보자에 따르면 폴란드에서만 전·현직 직원이 10명 이상이며, 잠재적 피해자를 포함하면 최소 12명에 달한다. 제보자는 “일부 피해자는 이미 연락이 끊겼다. 이들은 대부분 임금을 받지 못하고 떠났다”고 전했다.
피해는 직원에 국한되지 않았다. 폴란드 지사에서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모집해 ‘커리어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선수들에게는 “월 3000달러를 내면 훈련·숙소·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았다. 부모들에게는 “프로 진출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식의 허위 보고를 하며, 선수들이 피해 사실을 숨기도록 만들었다. 일부 가족은 프로그램 비용으로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송금했지만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협박·역고소 예고… “구조적 청년 착취 문제”
J씨는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주장을 담은 13페이지 분량의 공식 반박 문건을 2025년 5월 작성했다. 이 문건에는 직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무단 결근, 기밀 자료 유출, 세금 방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명예훼손” 등 20여 건의 위반 행위가 열거됐다. 또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유럽 각국 행정기관, 한국 외교부 등에 자료를 송부하겠다는 경고까지 담겨 있었다.
이 문건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는 “법적 대응을 준비하다가도 J씨가 예고한 국제적, 법적 제재 때문에 두려움을 느껴 포기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은 임금도 받지 못하고, 법적 대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최초 제보자는 본지에 “피해자는 직원만 6~8명 이상이며, 아마추어 선수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최소 20명 정도”라며 “외국인 신분의 한계 때문에 대응을 포기한 이들도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간 채무 문제가 아니라, 해외 인턴십과 스포츠 프로그램을 악용한 구조적 청년 착취”라고 강조했다.
폴란드에서 시작된 사건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인다. 피해자들은 SNS 계정을 개설해 자료를 공개하고 있으며, 일부는 현지 법적 절차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J씨는 여전히 SNS를 통해 자신을 ‘피해자이자 선구자’로 포장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또 다른 피해자를 유입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본지는 J씨의 입장을 듣고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메일, 모바일 메시지, 전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수차례의 통화 시도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다음 기사에서는 사건이 스페인까지 확산한 정황과 현지에서 새롭게 드러난 피해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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