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행진에…조선 웃고 철강 울고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30원을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국내 산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해외에서 선박을 수주하는 조선업은 수익 개선 기대감이 커진 반면,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하는 철강업계는 비용 부담이 확대됐다.

13일 원·달러 환율은 15시 30분 종가 기준 1425.8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거래일 대비 4.8원 오른 수준이다. 미·중 무역갈등 재점화로 장중 1430원을 넘나들기도 했으나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 영향으로 오후에 다소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은 최근 한 달 새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는데, 연초 1330원대였던 환율이 90원 넘게 급등했다.

1420원대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 (사진=연합뉴스)

환율 급등은 조선업계에 반가운 소식이다. 조선사들은 대부분 선박 계약을 달러로 체결해 환율이 오를수록 매출이 원화로 환산될 때 불어난다. 업계 관계자는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연말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장기 건조계약 비중이 높은 대형 조선사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헤비테일’ 방식의 결제 비중이 높은 조선사들은 더욱 유리할 전망이다. 헤비테일은 계약금과 중도금보다 잔금의 비중이 훨씬 큰 결제 방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황이 악화하자 수주량을 늘리기 위해 조선업체들이 이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시점에 대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원화 환산액도 커지게 된다. 다만 최근에는 선수금 비중을 점차 높여가는 추세다.

조선사들마다 차별화된 환헤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환율 영향도 서로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환헤지란 환율 변동의 위험을 없애는 거래 방식으로, 현재 시점에서 미래 환율을 미리 고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의 경우 환 노출 비중이 높아 이번 고환율에 따른 수혜가 국내 조선 3사 중에서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중공업의 환 노출 비중은 30~40%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삼성중공업은 100% 헤지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철강업계는 달러 강세가 부담 요인이다. 국내 철강사들은 철강제품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 유연탄 등 주요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환율이 오를수록 원가가 뛰기 때문이다. 환율이 10% 움직일 때마다 수백억원 수준의 손익 변동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 정책을 강화하면서 수출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산 보호를 이유로 철강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했고, EU도 최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대체하는 새로운 저율관세할당(TRQ) 제도를 도입해 수입량을 제한키로 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로 국내 시장 장악력 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수출길도 더욱 좁아지게 된 셈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EU향 철강 수출 금액은 44억8000만달러(13.5%)로, 우리나라의 철강 업체들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집계됐다. 두 번째로 큰 수출시장은 총 43억5000만달러(13.1%)를 수입한 미국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