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13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국정감사는 예정 시간보다 약 40분 늦게 시작됐다. 이번 국감의 가장 큰 쟁점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 미국 웨스팅하우스(WEC) 사이에서 이뤄진 지식재산권 분쟁 합의문을 공개할지 여부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합의문 공개를 두고 격렬하게 맞붙으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국감이 시작되자 민주당은 곧바로 합의문 공개를 강하게 요구했다.
정진욱 의원은 "당시 (윤석열)대통령실이 합의 내용에 반대하던 한전 이사진을 불러 질책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산업부 장관도 '체코 원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오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 합의는 국익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한국 원전 산업을 외국 기업에 종속시키는 '매국적 계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김동아 의원은 더 직설적인 표현도 사용했다. 그는 "지금 이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치운 똥을 대신 치우는 처지"라면서, 국민의힘을 향해 "그 똥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제는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즉각 반발하며 고성이 오갔고, 국감장은 한때 파행 분위기까지 치달았다.
국민의힘도 맞대응에 나섰다. 위원장 이철규 의원은 "야당은 주요 국익이 걸린 사안을 비공개하자고 하고, 민주당은 공개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위원회에서 의결해 합의문을 공개하고 논란의 실체를 가리자"고 제안했다. 공개 자체를 여야의 합의로 끌어가는 모습에, 오히려 진영 구도가 역전된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산업통상부 김정관 장관은 "한미 관계 등 외교와 안보가 걸린 부분이 많아 합의문 공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지만, 합의문 공개 논쟁의 불씨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번 논란의 흐름을 보면 처음에는 민주당이 자료 제출과 경위 확인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공세에 나섰고, 국민의힘은 일부 위원들이 이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이후 오히려 공개로 압박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동아 의원이 언급한 '싸놓은 똥'이라는 표현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 등은 "그게 무슨 말이냐", "이재명 정부야말로 똥을 싸고 있다"는 식으로 즉각 반발하며, 회의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위원장 이철규 의원이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회의는 개시 후 한 시간 반 가까이 흐른 정오 경 정회됐다.
국감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증인 채택을 둘러싼 다툼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증인 추가를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철규 위원장은 "여야의 대립이 심한 만큼, 논란을 풀기 위해 문서를 공개하자"고 제안했으나, 민주당은 "공개 논의에 앞서 협의 과정의 경위를 밝히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처럼 증인과 문건 공개를 둘러싼 공방은 단순히 감사 일정을 지연시키는 것을 넘어 국민에게 어떤 정보가 공개될지, 정부가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책임과 태도를 곧바로 시험하는 장이 됐다.
이번 논쟁의 중심에는 한·미 원전 협력 합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합의문에는 한국 기업이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 등을 개발해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의 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건 때문에 한국의 기술 자립성과 경쟁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이 조약이 "한국 기업에게 과도한 의무를 지우고, 미국 기업에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굴욕적 합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원전 업계 관계자들은 "국제 수준의 안전성과 품질 보증 기준이 합의문에 담겨야 한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지만, 이제는 공개 여부 논란이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 국익과 주권, 외교문제까지 엮인 민감한 이슈로 번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이 꼭 알아야 할 합의문의 실체, 이 합의가 한국 산업과 기술 주권에 미칠 영향, 정부가 제공할 정보의 범위와 책임, 그리고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다. 이 모든 쟁점이 지금 국회 질의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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