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열병식은 최초 공개된 신무기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명품 무기들로 눈길을 끌었다. ‘괴물 미사일’로 불리는 현무-5가 지상을 달렸고, ‘차세대 무인항공기’ 스텔스 무인기가 처음 등장해 위용을 뽐냈다. 하늘을 가른 항공 전력은 해병대 상륙공격헬기(MAH)로 시작돼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가 대미를 장식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선진 강군’이 이날의 메시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방국의 무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최첨단 전차와 자주포, 전투기, 잠수함을 수출하는 방위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났다”면서 77년 국방 역사를 되돌아보고 ‘자주국방’ 실현을 선언했다. 현 정부 국정과제의 한 축을 이루는 방위산업 육성은 국내 빅4 기업에게도 기회다. 다만 급격한 성장 뒤에는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편집자주>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국내 유일한 항공완제기 제작사로 국방과 우주 전 분야를 아우르는 영공 수호의 핵심축이다. 주력 기종인 FA-50의 수출 호조에 이어 차세대 전투기 KF-21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대표이사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경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KAI는 항공기·우주선·위성체·발사체 및 관련 부품의 설계·제조·판매·정비 사업을 영위하며, 군수사업을 중심으로 한국 방위산업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경남 사천 본사를 중심으로 산청·종포·고성 등 3개 사업장과 서울·대전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미주·동남아 등 해외 거점에도 현지 법인과 사무소를 두며 글로벌 공급망을 확대 중이다.
제품군은 훈련기·전투기·헬기·무인기·위성·발사체로 구분된다. 훈련기 부문에서는 KT-1(기본훈련기)과 T-50(고등훈련기)이 대표적이다. KT-1은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된 프로펠러 훈련기로, 인도네시아·페루·터키·세네갈·태국 등 여러 국가에 수출되며 국산 항공기 수출의 기반을 다졌다. T-50은 록히드마틴과 기술 협력을 통해 개발된 초음속 훈련기로, 현재 폴란드·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 공군이 운용 중이다.
T-50을 기반으로 한 FA-50은 KAI의 대표 수출 기종이다. 항속거리와 무장 탑재량을 개선해 다목적 전투기로 운용이 가능하며, 유지·보수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리핀·폴란드·말레이시아 등과의 계약이 잇따르며 주력 수출 라인업으로 자리 잡았다. 폴란드에는 FA-50 48대가 순차 납품 중이고, 말레이시아에는 18대 공급 계약이 체결됐다. 지난 6월에는 필리핀과 12대 추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전투기 부문에서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가 핵심이다. KAI가 주관하고 방위사업청과 공군이 공동 개발 중인 KF-21은 국내 독자 기술로 만든 첫 중형 전투기로, 엔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항전·구조·소프트웨어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4.5세대급 전투기로 분류되며, 현재 시제기 6대가 비행시험 중이다. 양산은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회전익 부문에서는 KUH ‘수리온’과 LAH(소형무장헬기)가 주축이다. 수리온은 병력 수송, 응급구호, 산불 진화, 해상 작전 등 다목적 임무에 투입되고 있다. 지금까지 약 300여 대가 양산됐으며, 경찰·소방용과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등 파생형도 개발됐다. LAH는 유로콥터와 공동 개발한 차세대 공격헬기로, 고기동성과 정밀 타격 능력을 갖췄다.
무인기(UAV) 부문에서는 ‘송골매’가 대표적이다. 송골매는 실시간 감시·정찰용 중형 무인기로, 고해상도 영상정보를 수집해 군사작전이나 재난대응에 활용된다. KAI는 이를 바탕으로 공격형 무인기와 유·무인 복합체계(MUM-T) 개발을 추진 중이다.
우주 분야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최초로 민간기업이 주관하는 ‘차세대 중형위성’ 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국방위성·정찰위성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한국형발사체(KSLV-II) 체계총조립을 맡아 추진제 탱크를 자체 제작하며 발사체 핵심 기술력을 축적했다. 향후에는 위성체 통합부터 발사체 구조체, 지상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내부 리스크도 존재한다. 현재 불안을 키우는 요인은 리더십 공백이다. 강구영 전 사장이 임기를 약 3개월 앞두고 조기 퇴임한 뒤로 대표이사 선임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리더십 공백은 이달로 넉 달째가 된다. 때문에 대형 수출 협상과 신규 사업 투자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영 효율성과 대외 신뢰성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문제는 오는 17일부터 열리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를 앞두고 더욱 부각되고 있다. ADEX는 전 세계 30여 개국 정부 대표단과 주요 방산기업 CEO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 무대다. KAI에겐 FA-50·KF-21·LAH 등 주력 수출 기종을 선보일 절호의 기회이지만, 대표이사 대행 체제로 참가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협상과 계약 논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KAI 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ADEX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라 국가 항공우주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자리”라며 “대표이사 대행 체제로 참가한다면 국제 신뢰가 훼손되고 방산 수출 경쟁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또 “한화·LIG 등 경쟁사 CEO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상황에서 KAI만 최고 책임자 부재 상태로 나선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자 조직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리더십 공백은 민영화론에 불을 지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인선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KAI의 최대주주가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인데, 윤희성 전 행장이 지난 7월 퇴임한 이후 공석 상태다. 여기에 정권 교체에 따른 방위사업청장 인선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방위사업청과 수출입은행 인선 후에 KAI 인선이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리더십 공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이 같은 배경은 KAI에 대한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의도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수출입은행은 “현재 KAI 주식 매각 계획은 없으며, 향후 대내외 여건 변화가 있을 경우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민영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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