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英 헬레나 수녀 지도로 발족…신앙·봉사·나눔 실천
6월 항쟁 때 '경찰 성당 난입'에 항의한 '단식 사제' 지킨 어머니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대한성공회의 신앙공동체·봉사 조직인 전국어머니연합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12일 대한성공회 전국어머니연합회에 따르면 이 단체는 영국 성공회 사제의 부인인 메리 섬너(1828∼1921) 여사에 의해 1876년 시작된 '머더즈 유니언'(Mother's Union·어머니연합회)이라는 운동이 한국으로 전래하면서 조직됐다.
머더즈 유니언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돕기 위해 시작한 단체였으며 오늘날에는 세계 각지로 확산해 봉사 조직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어머니연합회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영국 성베드로수녀원에서 파견된 헬레나(헬렌) 수녀의 지도를 받아 서울대성당에서 31명가량이 '조선어머니연합회'라는 단체의 수습회원으로 등록하면서 시작됐다. 1982년에 발행된 '대한성공회 요람'은 조선어머니연합회의 발족일을 1925년 9월 24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연합회는 신자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자녀의 혼인이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잘 이루어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회원들은 기부금을 모아서 교회를 지원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도 힘을 썼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펴낸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에 따르면 성공회는 아서 차드웰(1892∼1967) 신부가 1940년 투옥되고 이듬해 모든 선교사에 대해 추방령이 내려지는 등 일제 강점기에 심한 탄압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이념 대립과 한국 전쟁으로 성공회 활동 자체가 어려움을 겪었고 이 무렵 어머니연합회 역시 침체기를 보냈다.
어머니연합회는 1959년 노정빈(Agnes Josephine Roberts·1914∼1998) 선교사가 영국에서 한국으로 파송되면서 재기의 틀을 마련한다. 노 선교사는 직접 랜드로버를 운전해 전국을 돌며 어머니회를 다시 조직했다. 육아법, 가족계획, 보건 위생에 관해서 교육하기도 하고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거나 성경 학습을 독려하기도 했다. 간호사이기도 한 그는 한센병 환자·무의촌 환자 등을 보살피는 등 의료 활동도 펼쳤고 1982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하는 훈장을 받았다.
어머니연합회는 교구별로 활동하다가 1979년 2월 열린 전국어머니연합회 창립총회를 계기로 전국 단위 조직이 출범한다.
대한성공회는 1987년 6월 10일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가 서울주교좌성당(서울대성당)에서 열리는 등 명동대성당과 더불어 6월 민주 항쟁의 진원지로 거듭났고 이 과정에서 어머니연합회도 함께 했다.
같은 해 7월 9일에는 이한열(李韓烈·1966∼1987) 열사의 노제 후 서울시청 광장 일대에 남아 있는 시위대와 시민들을 해산·연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서울주교좌성당에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성공회 사제단 47명은 경찰의 교회 난입에 항의하며 일주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고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단식농성장 앞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며 사제들을 지켰다.
어머니연합회는 성공회 동경교구와 협력해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도 장기간 벌였고 1995년에는 동아시아지역 동아시아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대전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 연대회의'를 개최하는 등 한일 역사 문제와 관련한 해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회원들은 기도회를 비롯해 신앙 교류 활동 외에도 수시로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바자를 열기도 했고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자선 활동, 우간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한 물품 보내기 운동 등 여러 형태의 나눔과 봉사를 실천했다.
어머니연합회의 100주년은 최근 사라 멀랠리(63) 런던 주교가 영국 성공회(국교회) 최고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돼 491년 영국 성공회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 리더십이 탄생하는 등 성공회에 변화의 물결이 이는 상황이라서 더 눈길을 끈다.
노 선교사가 한국에서 활동할 때 통역으로서 보필한 오인숙 카타리나 사제수녀는 대한성공회 전국어머니연합회가 100주년을 기념해 최근 펴낸 '대한성공회 어머니연합회 100년사'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어머니들의 노력이 대한성공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동력이었다고 평가했다.
"여성들의 활동이 없었으면 성공회가 존재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 정도로 어머니들이 미사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의 의미도 배우고, 성경 공부도 하고, 교회에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제의라든지, 십자가라든지, 청소도구 등 이런 걸 다 마련하고 하셨으니까요."
지난달 20일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전국어머니연합회 창립 100주년 기념 감사 성찬례에서 박동신 오네시모 대한성공회 의장주교는 "교회의 구조는 오랫동안 남성 중심이었지만, 진정으로 교회를 지탱해온 것은 어머니들의 기도와 헌신이었다"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여성의 신앙이 가장 견고한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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