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2025년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세 분야 모두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를 관찰하고 제어한 연구에 돌아갔다.
원자 단위의 양자 현상, 분자 구조 설계, 면역 시스템의 정밀 조절 등 보이지 않는 영역을 탐구한 성과가 인류 과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열었다.
◆ 물리학상 – 거시적 회로 속에서 드러난 양자 현상
올해 물리학상은 거시적 전기회로에서도 양자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입증한 연구팀이 차지했다. 수상자는 존 클라크(UC버클리), 미셸 드보레(예일대·UC샌타바버라), 존 마티니스(UC샌타바버라·Qolab)다.
이들은 초전도 회로와 조셉슨 접합을 활용해, 눈에 보이는 크기의 전기회로에서도 에너지 양자화와 터널링 현상이 발생함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그동안 양자역학은 원자나 전자 등 미시 세계의 법칙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연구는 거시적 시스템에서도 양자 효과가 작동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번 발견은 초전도 큐비트를 활용한 양자컴퓨터와 초정밀 센서 개발의 핵심 기반이 된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했던 문제 해결 가능성을 열고, 초정밀 센서는 의료·환경·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측정 기술로 응용될 전망이다.
◆ 화학상 – 분자 설계로 만든 나노 구조체
화학상은 분자 수준에서 물질을 설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는 기타가와 스스무(교토대), 리처드 롭슨(멜버른대), 오마르 야기(UC버클리)다.
연구팀은 금속 이온과 유기 리간드를 결합해 내부에 수많은 나노 구멍을 가진 다공성 결정 구조체,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만들어냈다. 이 구조 덕분에 MOF는 기체 저장, 이산화탄소 포집, 수분 흡수 등 다양한 환경 기술에 활용될 수 있다. 사막 공기에서 물을 추출하거나 온실가스를 효율적으로 흡착하는 소재로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구조 안정성과 생산 단가 개선은 향후 해결 과제로 남아 있으며, 연구팀은 이를 개선해 산업적 응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 생리의학상 – 면역 균형을 지키는 조절 T세포
생리의학상은 조절 T세포 연구를 주도한 과학자들이 수상했다. 수상자는 메리 브런코(시스템생물학연구소), 프레드 램스델(소노마 바이오테라퓨틱스), 사카구치 시몬(오사카대)이다.
조절 T세포는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며 자가면역질환을 예방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T세포가 대사와 염증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조절 T세포 내 단백질 ‘Aster-A’를 제거한 생쥐에서는 면역 과활성으로 장내 염증이 증가하고, 지방 흡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면역 체계가 단순 방어를 넘어 인체 대사와 건강 유지 전반에 관여함을 보여준다.
이번 발견은 자가면역질환과 암 치료뿐 아니라 비만과 대사질환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 보이지 않던 세계를 현실로 바꾸다
2025년 노벨상은 기초과학이 단순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산업과 사회 변화를 이끄는 핵심 기반임을 보여줬다. 양자역학 연구는 컴퓨터 기술과 초정밀 센서로, 분자 설계 연구는 환경 소재로, 면역 연구는 신약과 치료 기술로 현실화되고 있다.
작은 실험에서 시작된 기초과학이 거대한 변화를 만드는 시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능력은 산업 경쟁력과 미래 문명 설계의 핵심이 된다. 과학은 다시 인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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