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가을이 깊어가는 미시간에, 600년 전 조선 궁중에서 울려 퍼졌던 소리가 도착한다.
조선 세종대왕이 창제한 시각장애인 궁중 악사 제도를 계승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오는 10월 18일부터 24일까지,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와 앤아버(Ann Arbor)에서 순회 공연을 펼친다.
우리는 흔히 전통을 ‘과거’로 분류한다. 옛것, 익숙하지만 박제된 유산. 그러나 관현맹인의 무대는 사고를 뒤흔든다. 조선 세종대왕이 창제한 궁중의 시각장애인 악사 제도, 이 역사적 시작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기록’이 아닌 ‘실천’으로, ‘유산’이 아닌 ‘예술’로 진화해 왔다.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열리는 교민 초청 특별공연(10월 19일)은 그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mazing Grace’와 ‘아리랑’이 같은 무대에 올라, 서구와 동양, 신앙과 민족의 감성이 맞닿는다. 더 놀라운 것은, AI와 함께 구현된 창작곡 ‘무동’, ‘쌍검대무’, 그리고 생황으로 연주되는 ‘Nella Fantasia’ 같은 실험적 시도다.
관현맹인은 ‘전통을 보존하는 단체’가 아니다. 그들은 시각장애인 예술가다. 그 자체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예술이란, ‘보는’ 것인가, 아니면 ‘느끼는’ 것인가.
세상의 많은 예술이 ‘시각’에 의존하는 시대에, 관현맹인의 음악은 청각과 감성, 기억과 역사로 사람들을 흔든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소속 ‘호산나합창단’이 함께 참여해, 무대 위 포용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시각을 대신해 내면의 시선을 연주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감동’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전달한다. 전통은 이들에게 자랑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이번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AI와의 협업이다. AI는 악보를 만들고, 음향을 분석하며, 인간이 도달하기 힘든 패턴을 예측한다. 그런 기술이 ‘관현맹인’이라는 이름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미학적 충돌이다.
하지만 이 충돌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통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감정, 역사, 정체성이다. 그리고 관현맹인은 그 도구 위에 전통의 감성을 덧입혀, 전혀 새로운 형태의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동익 단장은 “이 무대는 600년 전통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 세계인과 소통하는 자리다.”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관현맹인의 음악은 오늘도 전통의 시간을 건너, 현대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 소리는, 디트로이트의 가을 하늘 아래에서도, 여전히 새롭고, 깊으며, 의미 있는 진동으로 남을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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