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9. 목요일]
위(魏)의 대업과 은밀한 조력자
위왕(魏王) 조조(曹操)가 천하의 반을 손아귀에 넣고 허도(許都)의 정치를 장악한 지 수개월. 백성들은 그의 치세 아래 풍요를 얻었으나, 한실(漢室)을 복원하려는 충신들과 반역을 꾀하는 호족들 사이에서 조조의 권력은 늘 시험대에 올랐다. 조조는 늘 곁에 가장 믿을 만한 책사들을 두었으니, 그중에서도 여인 현지(玄之)는 그야말로 조조의 그림자였다.
현지 낭자(娘子)는 조조가 성남(成南)의 작은 태수였을 때부터 28년간 동고동락하며, 조조의 내실(內實)과 외치(外治)를 모두 꿰뚫고 있는 인물이었다. 조조가 천하를 재패한 후, 현지는 승상부(丞相府)의 내밀한 살림을 도맡는 가사참군(家事參軍), 즉 총무비서관이 되었다. 이는 위왕의 예산 집행, 궁궐 시설 관리, 그리고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로, 그 권세가 재야의 승상(丞相)에 비견되었다.
허도에서는 그녀를 일컬어 ‘만사현통(萬事玄通)’이라 속삭였으니, “모든 일은 현지 낭자의 손길을 거쳐야만 통한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개인사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으나 막강한 권한으로 고위 관료의 인사에까지 개입한다는 풍문이 조조의 측근들 사이에서도 만연했다. 그녀는 조조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감시망 바깥에 선 ‘그림자 실세’ 그 자체였다.
어사대의 봉소(封所)와 조조의 묘책
때는 가을, 어사대(御史臺, 국회)의 대규모 황궁 감찰(國政監査)을 앞두고 조정이 술렁거렸다. 한실 복원을 주장하는 개혁파들은 조조의 사설 권력 남용과 재정 투명성을 검증하기 위해 현지 낭자를 필수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개혁파의 대변인 장동혁(張東赫)은 격렬하게 상소문을 올렸다.
“가사참군은 황실의 국고와 예산을 관장하는 직위로, 14대 어사대 이후 단 한 번도 감찰에서 제외된 적이 없는 철칙입니다. 지금 위왕께서는 국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겠다 약속하셨거늘, 어찌하여 이 여인만은 감춰야 한단 말입니까!”
실제로 조조는 집권 초기, 역대 위왕들이 숨겨왔던 특수 군비(특수활동비)의 일부 장부를 공개하며 투명성을 강조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의 최측근을 감찰대에 세우는 것은, 그녀에게 쏟아지는 사적인 의혹(부동산 의혹, 비영리단체 횡령 의혹 등) 은 물론, 조조 자신의 인사 전횡까지 만천하에 공개할 위험이 있었다.
이때, 조조가 묘책(妙策)을 내렸다.
감찰을 며칠 앞두고, 조조는 현지 낭자를 가사참군직에서 전격 해임하고, 위왕을 근거리에서 수행하며 기밀을 유지하는 근시관(近侍官), 즉 제1부속실장으로 임명하였다. 근시관은 위왕의 일신을 보좌한다는 명분으로, 역대 감찰에서 출석이 관례적으로 면제되는 직위였다.
개혁파의 분노와 현통지계(玄通之計)
조조의 이 '인사 조치'는 조정에 폭풍을 일으켰다. 개혁파들은 경악하며 이것이야말로 ‘기상천외하고 창의적인 방탄 인사’라고 규탄했다.
개혁파의 원로 유상범(兪相範)은 조정을 향해 조소했다.
“감찰을 피하려 직위를 바꾸는 것이 조조의 책략이오? 그녀는 이미 위왕의 그림자를 넘어 ‘존엄(尊嚴)’이오! 이렇듯 숨겨야만 하는 여인이라면, 우리는 더욱더 그녀를 국감대에 세워야 할 이유가 생겼소!”
그들의 주장은 명확했다. 핵심은 현지 낭자가 총무비서관직을 수행하며 벌였던 과거의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지, 현재 보직의 관례를 따를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당인 민주당의 대변인이면서 조조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박수현(朴洙賢)은 이 인사가 순리였음을 강변했다.
“현지 낭자는 본디 위왕의 대외 공보 기능 강화를 위해 직책을 옮긴 것일 뿐이오. 더욱이 개혁파들의 진정한 의도는 황궁 살림이 아니라, 오랫동안 위왕을 모신 그녀를 불러내 과거의 정쟁(政爭)을 일으키려는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소!”
조조의 조정은 '방탄'이 아님을 외쳤지만, 실제로 그녀의 출석은 조조의 파벌이 막아섰다. 박수현은 은밀히 속삭였다.
“위왕의 뜻이 어떠하든, 그녀의 출석을 합의해 줄 파벌은 없소.”
이는 조조가 공식적으로는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실제로는 집권당인 자신의 파벌을 방패로 삼아 실질적인 감찰을 무력화시키는 ‘현통지계’를 사용했음을 의미했다.
조정의 분열과 원로의 탄식
조조의 파벌 내부에서도 의견은 분분했다.
원로대신 박지원(朴智源)은 MBC 라디오에 출현하여 쓴소리를 던졌다.
“근시관이 감찰에 나온 예는 없소. 허나, 여야가 합의하여 증인으로 채택한다면 당연히 나와야 하는 것이 도리요.”
그는 조조의 과거 측근인 박근혜(朴槿惠) 시대의 ‘문고리 권력’과 현지 낭자를 비교하며, “떳떳하다면 그녀가 나서서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위왕의 정통성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조정의 실무를 담당하는 원내 관계자는 현실론을 펼쳤다.
“우리 파벌은 현지 낭자가 감찰에 나와야 할 명분과 이유를 정확히 따져봐야 하오. 이유와 명분도 없이 정적의 공세에 협력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오.”
조조는 이 모든 논란 속에서 침묵을 지켰다. 그는 가사참군이 감찰에 나가는 제도적 관례를, 근시관은 감찰에 불출석한다는 행정적 관례를 이용해 교묘하게 회피하는 ‘법적 회색지대’에 몸을 숨겼다.
결국 현지 낭자의 인사이동은 단순한 인사권 행사를 넘어, 황실의 사적 권력이 공적인 제도적 견제를 무력화시키는 극도의 권모술수(權謀術數)로 기록되었다. 조조는 투명성을 강조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그림자를 숨김으로써 '만사현통'의 의혹을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이는 조조의 통치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자기모순(自己矛盾)의 오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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