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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고구려나 백제, 신라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또 더 멀리 고조선 시대로 간다면 말이 통할까. 한국어의 기원과 변천사를 다룬 유튜브 채널 '세상연구소'의 영상이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조법종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가 출연한 영상에선 한국어의 계통과 삼국시대 언어 소통 가능성에 대한 학술적 근거들이 소개됐다. 조 교수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말이 통했다"며 "문헌적 기록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국사기 등 역사 기록에는 삼국 간 통역 없이 의사소통했던 사례가 다수 등장한다. 백제에 살던 서동이 신라 경주에 가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쳤다는 선화공주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백제 청년이 신라 수도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동요를 가르쳤다는 것은 양국 언어가 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더 구체적인 사례도 있다. 백제가 멸망하기 전 백제 좌평 임자의 노비가 된 신라 부산벌령 출신 조미갑은 몰래 신라를 다녀온 뒤 밤중에 임자를 찾아가 김유신 장군의 메시지를 전했다. "만일 신라와 백제가 전쟁이 나서 어느 한 나라가 망하게 될 경우 서로 도와주기로 했다"는 간첩 행위를 통역 없이 직접 대화로 이뤘다는 기록이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도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장수왕이 백제를 정복하기 위해 보낸 승려 도림은 개로왕과 바둑을 두며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또 백합야 전투에서는 고구려 장수가 "나는 성씨가 부여다"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백제 위덕왕이 "나도 당신과 성은 같다"며 서로 통성명하고 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와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의 거칠부가 젊었을 때 고구려로 몰래 가서 해량 스님의 법회에 참석했다가 밤에 스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김춘추가 고구려에 갇혔을 때 선도해라는 고구려 귀족과 직접 대화하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활용해 탈출 방법을 모색한 일화도 전해진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갈 경우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북송 사신이 쓴 '계림유사'에는 고려 시대 어휘를 한자 음가로 기록한 360여 가지 단어가 남아 있는데, 하늘, 땅 같은 기본 어휘부터 숫자 세는 법까지 현재 우리가 쓰는 표현과 거의 같다. 더 놀라운 것은 1980년대 백제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목간에서 백제의 숫자 세기인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이 현대어와 80~90% 비슷한 형태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고조선 시대 언어도 현재와 상당한 연결고리를 보인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조선'과 '아사달'이라는 지명을 분석한 결과, '아사'는 아침을 뜻하고 '달'은 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어로 아침을 뜻하는 '아사'와 연결되는 이 표현은 고조선 언어의 원형을 보여준다. '단군' 역시 제단의 임금이라는 뜻인데, 현재도 무당을 의미하는 '단골'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조 교수는 "한국어는 교착어로 단어가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문법적으로나 표현에서 큰 변형이 없다"며 "처음은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금방 파악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중국, 일본과는 언어가 달랐다. 후한 시기 중국 사신이 마한 세력과 협상할 때 통역이 오역을 해서 전쟁이 일어난 사건이 있었고, 고구려는 숙신족과 중국 사이에서 중역, 즉 이중 통역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와 왜 사이에도 '신라학어'라는 통역관이 필요했다.
조 교수는 "1500년 전을 봤을 때 의외로 우리가 언어적인 혼란을 겪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며 "대규모 이민족 유입이 없었기 때문에 언어 표현이 현재 사람들이 고대에 가도 처음엔 낯설겠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과거 알타이어족으로 분류됐으나 최근에는 이를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주류 학계의 입장이다. 알타이어족이라는 개념은 19세기 중앙아시아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형성된 언어 분류 체계였으나, 한국어와 다른 알타이 제어들의 유사성이 같은 기원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오랜 기간 근접 지역에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국어를 알타이어권에서 분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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