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고구려 때부터 잘생겼다... 증거도 있다” 역사학자가 단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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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고구려 때부터 잘생겼다... 증거도 있다” 역사학자가 단언한 이유

위키트리 2025-10-07 09:19: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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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3호분 벽화에 그려진 묘주 부부 중 남성. 좌우에 관리를 거느리고 정사를 보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 동북아역사넷 홈페이지

"한국 사람들은 코카서스 인종이 아닌가."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긴 이 기록은 당시 조선인들의 외모가 중국이나 일본과 확연히 달랐음을 보여준다. 코카서스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코카서스 인종이란 백인을 뜻한다. 실제로 한국인의 외모는 동아시아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특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한 역사학자는 그 답을 4000km 떨어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찾았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체류하며 유라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윤명철 사마르칸트대 교수가 최근 '삼프로TV'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한국인은 고구려 때부터 잘생겼었다고?' 편에서 한국인들의 외모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여행을 많이 한 미국인 친구가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반응을 소개했다. 윤 교수 친구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체구가 장대하고 잘생겼나"라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친구는 베이징 공항이나 나리타 공항, 홍콩 공항에 내렸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한국인과 중앙아시아의 연결고리로 한국인들만의 외모적 특징을 풀어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고구려인 중에는 '색목인'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색목인은 서역에서 온 이들을 뜻한다. 고구려 시대의 대표적인 고분들인 안악3호분, 각저총, 무용총의 벽화를 보면 눈이 크고 곱슬머리에 코가 큰 서역인들이 등장한다. 서역은 중국 서쪽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말한다.

윤 교수는 "이들은 돌궐, 투르크 계통"이라며 "그 이전부터 있던 종족에 페르시아계, 그리스계, 그리고 나중에 투르크계가 섞인 소그드인"이라고 설명했다. 돌궐과 투르크는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 살던 유목 민족이다. 소그드인은 고대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 무역을 주도했던 민족이다. 그들의 중심지가 바로 사마르칸트였다.

고구려와 사마르칸트가 직접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 1970년대 초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아브 성 안 작은 궁전에서 벽화가 발굴됐다. 이 벽화는 7세기 당시 사마르칸트 왕에게 온 사신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중에는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인물이 보인다. 복식과 외모가 고구려 특유의 양식을 보여 학계에서도 대체로 고구려 사신으로 보고 있다.

윤 교수는 "7세기는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에 맞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던 때"라며 "고구려 사신이 사마르칸트에 왔다는 것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외교 네트워크를 확대하려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당시 전쟁은 동아시아 국제 대전의 성격을 띠었기에 고구려는 외교적 지지 세력을 확보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고구려인들이 어떻게 4000km나 떨어진 곳까지 갔을까. 윤 교수는 "당시 동돌궐은 당나라에 복속돼 있었지만 서돌궐 지역은 따로 있었다"며 "고구려인들은 아마도 투르크인, 즉 서돌궐의 도움을 받아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돌궐은 당시 동서로 분열돼 있었는데, 동쪽의 동돌궐은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지만 서쪽의 서돌궐은 독립적으로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음악과 춤에도 중앙아시아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고구려에는 38가지 악기가 있었는데 상당수가 중앙아시아와 일치한다. 고구려 춤과 음악은 당나라에서 '고려악' 또는 '고려무'로 불리며 유명했다. 특히 고구려 호선무는 국제적으로 유명해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백)의 시에도 등장한다. 호선무는 서역 지방의 춤이란 뜻이다. 윤 교수는 "고구려 호선무가 사마르칸트 것인지 고구려 것인지 논란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쪽과 직결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세종대왕의 천문학 발전도 중앙아시아와 연결된다. 윤 교수는 "화학, 천문학은 원래 아랍과 중앙아시아의 산물"이라며 "티무르 제국은 당시 세계 최고의 나라로 천문학이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티무르 제국은 14세기 후반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건설된 거대한 제국으로,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았다.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 베그는 천문학자이자 통치자로, 많은 학자를 모아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이들이 연구한 천문학 지식이 중국을 거쳐 조선에 전해졌고, 세종대왕은 사신과 학자를 파견해 간접 교류를 했다. 실제로 사마르칸트 천문대 박물관의 천문 측정 기구와 세종 강릉에 있는 것이 거의 똑같다. 이는 조선이 중앙아시아의 앞선 천문학 기술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윤 교수는 우즈베키스탄이 한국과의 관계가 좋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일하고 온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사마르칸트"라며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힘이 좋고 부지런하며 정직하다고 평가받아 한국에서 대우를 잘 받았고, 그래서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중국인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지만 한국인은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방문을 고려한다면 5월 초가 가장 좋다. 윤 교수는 "날씨도 아직 덥지 않고, 사마르칸트뿐 아니라 부하라, 파미르,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호수, 천산까지 볼 수 있다"며 "꽃구경까지 겸하면 최고"라고 추천했다. 부하라는 사마르칸트와 함께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였고, 파미르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고원 지대다. 천산은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산맥이다. 사마르칸트는 농경문화권으로 밀농사 지역이며, 습도가 약간 있고 산도 있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티무르의 무덤이 있는 레기스탄 광장에서 '극미(極美)'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레기스탄은 '모래가 많은 곳'이란 뜻으로, 사마르칸트의 중심 광장이다. 윤 교수는 "미의 극치를 느꼈다"며 "화려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표현했다. 14세기 후반 티무르 제국이 만든 건축물들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조선이 건국되기 20년 전인 1370년대에 이미 이런 건축물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당시 티무르 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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