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최초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기증한 홍영자 씨 인터뷰
초기 美 이민자들 정착 돕고, 한글학교 운영하며 차세대 교육에도 힘써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남편이 생전에 받은 소중한 선물을 이제야 제자리를 찾게 해드린 것 같아 기뻐요."
83세 재미동포 홍영자 씨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고 있는 광복 80주년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 전시장을 찾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 뮬런버그대에서 동아시아·소비에트 정치학 및 역사 담당 교수로 활동하다 2023년 별세한 고(故) 이순원 교수의 부인이다. 남편이 소장하던 임시정부 발간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을 지난해 5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증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국가유산 기증자 초청 행사를 통해 방한해 1년 4개월 만에 전시장을 찾은 것이다.
홍 씨는 딸 이혜정(56) 씨, 기증에 도움을 준 조무제(58) 목사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우리 땅에서 제자리를 찾았으면 한다는 남편의 바람을 실천하게 돼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총 4권으로 된 사료집은 1920년대 임시정부가 편찬한 역사서다. 당시 100질이 인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완질로 전하는 것은 독립기념관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소장본 등 극히 일부다.
책은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침략사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 춘원 이광수가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 주임으로 참여해 서문을 남긴 것도 특징이다.
책은 이 교수가 1970년대 초 중국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홍 씨는 "남편이 학생들과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남대문 성도교회 소속 지인의 부탁으로 성경책 10여 권을 옌볜(延邊) 지역 동포들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중국 상황을 고려하면 성경을 들고 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시민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남편이 성경을 전달하자 사람들이 기뻐하며 이 책을 선물로 줬다"고 전했다. 이후 부부는 책을 고이 간직하며 언젠가 조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뜻을 품어왔다.
홍 씨는 언론인 출신 조 목사를 통해 사료집의 역사적 가치를 확인하고 "조건 없이 기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남편이 살아 계셨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방한 기간 서울 필동의 옛집과 부모님이 잠든 영락교회 묘지를 찾았다. 딸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전망대에도 올라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분단 현실을 실감했다.
"멀리서 보니 농사짓는 북한 사람들이 참 불쌍해 보이더군요. 고국 땅을 밟은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몰라, 가는 곳마다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는 아홉 살 무렵까지 평양에 살며 대동강 석양과 모란봉 풍경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을 가졌지만, 지금은 평양을 방문할 수 없다"면서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홍 씨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과 같다. 6·25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란하던 때 이름 모를 사람들이 떡과 음식을 나누어 주던 따뜻한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자기 먹을 것도 없었을 텐데 아이들이 많다고 떡을 나눠주셨어요. 지금도 그 따뜻함을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깡통으로 밥을 지어주셨는데, 소금만 있어도 밥이 꿀맛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음식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아요."
홍 씨는 이화여대 불문과를 다니다 YMCA 초청으로 1963년 미국에 건너가 15일 만에 남편과 결혼해 펜실베이니아주 리하이밸리 알렌타운에 정착했다. 연희전문학교를 나온 부친이 유명한 의류회사를 운영해 부유했으나 딸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미국인 가정집에서 설거지와 청소 등의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았으나, 이후 기프트카드숍을 운영하며 기반을 닦아 3층짜리 건물을 매입할 정도로 사업 감각을 발휘해 부를 일궜다.
이 교수는 정치학 연구와 강의에 평생을 바쳤으며, 리하이밸리 한인회를 조직해 초대회장을 지내며 한인 이민자 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혼 60주년을 불과 사흘 앞두고 2023년 8월 암 투병 끝에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편이 없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그가 남긴 신앙과 학문적 유산은 제 삶의 등불"이라고 했다.
홍 씨는 리하이밸리 한인교회 창립 멤버로서 47년간 신앙 공동체를 지켜왔다. 초기 한인 이민자들에게 법률적인 문제 해결과 영어 통역 지원을 통해 정착을 도왔다.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홍 씨는 10년 넘게 한글학교를 운영하며 차세대 교육에도 힘썼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재외동포들을 돕는 데도 앞장섰다. 그는 "우린 가진 건 없었지만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았다"며 "한인교회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교회에서 한인회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해 한인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애정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대한민국은 피와 땀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우리 것을 소중히 지키며 자긍심을 가져야 해요.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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