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연극 '낙월도', 여성의 목소리로 새긴 ‘저항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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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연극 '낙월도', 여성의 목소리로 새긴 ‘저항의 섬’

뉴스컬처 2025-10-06 12:10: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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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올해 제10회를 맞이한 여성연극제가 한 편의 묵직한 연극으로 막을 연다. 개막작은 이상희 연출의 ‘낙월도’. 지난 5월 ‘천승세 희곡열전’에서 화제를 모은 ‘낙월도×맨발’의 재연작이자, 천승세 작가의 원작을 새롭게 각색한 이 작품은 다시 한번 동시대의 관객을 향해 절박한 목소리를 던진다.

‘낙월도’는 연극 자체로서의 가치와 함께, 억압받는 이들의 분투와 침묵을 강요당한 자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려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이는 제10회 여성연극제가 지향해 온 방향성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사진=연극 '낙월도' 포스터.

연극의 배경은 ‘낙월도’라는 가상의 섬이다. 전설에 따르면, 왕이 바다의 신에게 계집을 바치고 달을 얻었다는 신화가 깃든 이 섬은, 실상은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고립된 지옥이다. 배를 가진 자만이 섬을 벗어날 수 있고, 배는 곧 권력이다.

폐쇄된 이 공간은 연극을 통해 하나의 축소된 사회로 기능한다. 최부자와 양서방, 두 권력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섬의 질서는 노잽이들과 여인들의 땀과 희생 위에 세워진 구조다. 그리고 이 섬에서 연극은 묻는다. ‘돈과 정보를 독점한 자들이 민주주의를 해체할 때, 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낙월도’의 미학적 완성도는 무대 위에서 더욱 빛난다. 이번 공연은 초연보다 더 정교해진 무대 언어와 오브제의 활용으로, 상징성과 몰입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벤치형 오브제는 때론 배로, 때론 대청마루로, 또 때론 인물의 내면 심리를 투사하는 도구로 기능하며, 무대 전체가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변모한다.

주목할 만한 장치는 두 인물의 ‘오브제화’다. ‘묵자’는 이야기꾼이자 조형적 캐릭터로 등장해 전래동화의 판타지를, 무당 ‘청백이’는 치유자이자 성서의 구절을 품은 상징적 존재로 재현된다. 이 두 인물은 조연의 역할을 넘어, 극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끌어올리는 장치다.

‘무릇 수고하는 자와 짐 진 자 다 내게로 오라. 나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오복음 11장 28절

천승세 원작의 정신은 이 한 구절을 통해 관통되며, 이는 이상희 연출이 택한 ‘청백이’의 역할에도 깊게 반영되어 있다.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라디오’라는 오브제의 상징적 사용이다. 서울에서 전파를 타고 흘러오는 노동운동의 소식, 그리고 이를 접할 수 있는 권력자의 유일한 소유물 라디오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정보의 독점과 권력의 연결 고리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낙월도 여인들의 침묵은 바로 이 ‘차단된 정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싸움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이들이, 바깥 세상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변할 수 있을까? ‘낙월도’는 이를 통해 여성과 민중의 각성을 제안한다. 연극은 목소리를 돌려주는 예술이며, 이 연극은 그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실천한다.

공연의 클라이맥스에서 월순이의 죽음을 마주한 용배는 외친다. “나한테 그 노만 줘봐.” 그 한마디에 낙월도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연극은 이렇게 한 인물의 절규를 통해 억압 구조의 균열을 시도한다. 비록 탈출은 불가능할지라도, 연극이 상상하는 자유는 관객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낙월도’는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연극 그 이상을 지닌다. 여성연극제가 지향하는 ‘목소리의 복원’, ‘침묵의 저항’, ‘연대의 가능성’이라는 시대정신이, 작품의 언어와 구조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제10회 여성연극제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작가전, 연출가전, 세대공감전, 기획초청 공연 등 다양한 무대를 통해 동시대 연극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 가을, ‘낙월도’는 단지 한 편의 공연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보내는 하나의 연극적 질문이자, 행동의 신호탄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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