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가 세계 무역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 부동산 편중 자산구조, 가계부채 누증이 맞물리며 경제의 기초 체력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정부는 ‘OECD 평균보다 낮다’는 국가부채 비율만을 근거로 재정확대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이는 위험한 착시다. 개인과 기업까지 포함한 총부채 수준은 이미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유사한 수준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부채 관리에 실패할 경우, 재정적자 리스크가 외환시장 불안으로 전이돼 제2의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가 재정적자 문제로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 사례는 한국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국가부채 관리 원칙을 제도화하고 국회의 견제 장치를 강화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 역시 신용등급 하락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 <투데이신문> 은 총 3편에 걸처 한국 국가부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조명한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정부가 국채 발행 확대와 관련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부채 비율을 근거로 재정 여력을 강조했지만, 이를 근거로 재정 건전성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계와 기업부채가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이는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6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47.2%로, 미국(약 107.7%)이나 프랑스(107.3%)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부채만으로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판단하는 것은 반쪽짜리라고 볼 수 있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모두 포함한 국가 총부채 비율은 GDP 대비 247.9%에 달해 미국(249.8%)과 유사하고 영국(222%)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은 기축통화국으로 부채가 많아도 발권력을 동원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20년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40%가 적정 국가채무비율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BIS 기준의 정부부채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달리, 비영리 공공기관과 비금융 공기업 등을 제외한 협의의 국가채무만을 포함한다. 때문에 완전한 국가부채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공공기관 부채까지 더해서 보면 결코 안정적이지 않은 수치”라며 “부채 증가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고령화 때문에 부채가 더더욱 빨리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을 유용하는 건 괜찮지만 과도하게 지출하거나 4% 적자율을 유지하면 안 되고 적자율을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꾸준히 소득과 신용이 취약한 계층까지 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점, 부동산 경기와 연계된 대출·PF(프로젝트파이낸싱) 급증, 한계기업 및 좀비기업 증가 등은 시스템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계부채의 상당수는 변동금리 상품이기 때문에 금리 상승기에는 민간부문 연쇄부실, 소비위축, 신용경색 등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사한 금융위기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가계·기업부채가 키우는 금융 불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에서 전개된 세계적 금융위기 사건으로, 미국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신용등급이 낮은 차주들에게 고위험성 주택 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급격히 늘어난 데서 비롯됐다.
당시 주택가격이 급등해 대출을 갚지 못해도 집값 상승분으로 손실을 메울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으나, 부동산 거품 붕괴와 금리 인상으로 상환이 어려워지자 대규모 압류와 증권 가치 하락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대형 금융사 연쇄파산과 세계 금융시장 신용경색이 일어났으며, 이는 국제적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같은 고부채·재정적자 경제에서의 신용등급 강등, 금융시장 불안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는 GDP 대비 국가채무가 114.1%에 달하며 올해 국제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국채금리 급등과 자본시장 혼란, 국채 발행 부담 가중으로 심대한 재정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김우철 교수는 “국제 사회에서 국가 신용도를 결정할 때 쓰는 비율은 D2(일반 정부부채)로, 국가채무(D1)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한 것”이라며 “이대로는 사실상 재정건전성 관리의 마지노선으로 보는 60%를 넘긴다”고 경고했다.
국채·회사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자금시장이 경색되는 상황에서는 기업의 투자·운영 기반이 약화되고 한계기업이 늘어나며, 금융기관 부실 위험도 빠르게 커진다.
국내 가계부채 역시 GDP 대비 약 89.6%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이 중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 대출로 구성되며, 최근 가계부채 관리 대책으로 감소세가 소폭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8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4조2000억원 늘어 전월(2조8000억원)보다 증가폭이 커졌다. 그중 주택담보대출이 3조9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실물부동산 시장과 연계된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여전히 심각한 편이다.
한국은행(이하 한은) 소비자동향조사에서 8월 주택가격전망 CSI는 111로 전월 대비 2포인트 늘었고, 9월 잠정치는 112로 오르는 등 추가 상승 여력도 남아있다.
현재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여전히 크다. 한은이 경기 침체 우려로 금리 인하 기조를 보이고 있지만, 지금처럼 가계부채 위험이 큰 상황에서는 실제 금리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다.
기준금리는 내려가더라도 대출금리가 쉽게 낮아지지 않아 예대금리차가 확대되고, 차주들의 상환 부담은 여전히 높다. 이로 인해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소비 위축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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