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뮤지컬 '쉐도우', 비극의 역사에 기타를 쥐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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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뮤지컬 '쉐도우', 비극의 역사에 기타를 쥐여주다

뉴스컬처 2025-10-05 14:26: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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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임오화변.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장면이다. 그런데 누가 감히, 이 비극의 문을 기타 리프와 록 발라드로 열 생각을 했을까?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쉐도우'는 ‘역사+타임슬립+록’이라는 상상력의 삼단 변주를 통해 사도세자와 영조의 비극적 관계를 새롭게 그려낸다. 얼핏 들으면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조합이지만, 공연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그 강렬한 진심과 정교한 감정선에 깊이 사로잡힌다.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무대 한가운데에는 철제 뒤주가 놓인다. 형벌의 상징이자, 감정의 무덤 같은 이 구조물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사도가 부적에 이름을 쓰는 순간, 시간이 열리고 과거의 어린 영조가 등장한다.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만남은, 예술만이 가능하게 만드는 감정의 공간을 열어젖힌다.

타임슬립은 죽음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인간적 본능이자 유일한 희망의 몸부림이다. 그래서 이 판타지는 그 어떤 역사책보다 묵직하고,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다.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음악은 비극에 날개를 단다. '쉐도우'의 사도는 단순한 비운의 왕자가 아니라, 록 스피릿을 품은 ‘이모 로커’다. 억눌린 감정, 고립, 분열, 절규를 록으로, 그것도 사이키델릭 록과 하드 메탈, 이모코어의 언어로 폭발시킨다. 이는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몸으로 울리는 방식이다. 등장인물의 내면은 기타의 절규와 드럼의 심장박동으로 대체된다. 영조 역을 맡은 한지상, 박민성, 김찬호는 강렬한 메탈의 냉혹함과 포크 발라드의 따뜻함을 오가며 권력자의 고독과 인간적인 흔들림을 오롯이 보여준다. 사도 역을 맡은 진호, 신은총, 조용휘는 각각의 색깔로 고립된 청춘의 언어를 노래한다. 아이돌 그룹 펜타곤 출신 진호는 폭발적인 록 보컬로 절규를 표현하고, 신은총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조용한 절망을 빚어낸다. 조용휘는 힘 있는 성량으로 비극의 정점을 날카롭게 찌른다.

작품은 2인극이라는 구조를 무기로 삼는다. 대형 군무도, 화려한 변환 무대도 없다. 대신 오직 두 인물의 시선, 호흡, 노래만으로 서사가 흐른다. 영상과 조명은 과장 없이 감정을 보조하고, 콘서트의 질주와 정지된 고요가 교차되며 공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관객은 어느새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파편 속을 헤매게 된다.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은 끝내 역사의 결말을 바꾸지 않는다. 사도는 죽고, 영조는 남는다. 그러나 그들이 시도했던 짧은 대화, 닿을 듯 닿지 못한 이해는 오히려 지금의 우리에게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모와 자식, 윗세대와 아랫세대, 권위와 저항 사이에 놓인 끝없는 간극 속에서 우리는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뮤지컬 '쉐도우'는 역사극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끝내 용기를 내어,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묻는 한 편의 록 발라드다. 극장은 어느새 조선의 법정도, 고궁도 아닌, 가장 내밀한 감정이 흘러나오는 작은 심장처럼 울리고 있다.

“지금 당신은 누구의 뒤주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당신은, 끝내 사랑할 용기를 낼 수 있는가.”

그것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대화, 사라진 연대, 왜곡된 권위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회적 발언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무대 위를 넘어, 객석을 지나, 관객의 일상까지 조용히 따라온다.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쉐도우'. 사진=블루스테이지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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