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극우 성향으로 '여자 아베'라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이 4일 집권 자민당의 첫 여성 총재로 선출됐다.
약 열흘 뒤에 치러지는 국회 총리 지명선거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여 사상 최초 여성 총리 탄생이 확실시된다.
다카이치는 매년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으며 지난 2022년에는 도쿄에서 열린 극우 단체 심포지엄 강연에서 한국을 겨냥해 "기어오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긴밀해진 한일관계가 다시 악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차 투표서 다카이치 1위-고이즈미 2위…결선서 29표차 승리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4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치러진 제29대 총재 선거 결선 투표에서 185표를 얻어 156표에 그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29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5명이 출마한 이번 선거 1차 투표에서는 다카이치 전 안보상이 183표를 얻어 1위에 올랐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64표를 얻어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앞서 일본 언론은 대체로 이번 선거 판세를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이 선두를 달리고 다카이치 총재는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에게 추격당하는 것으로 분석했으나, 실제 결과는 다카이치 총재의 사실상 낙승이었다.
이는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열세로 평가됐던 의원 투표에서도 보수 성향 의원들의 표를 모으며 선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결선 투표에서는 파벌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내 유일한 파벌을 이끄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다카이치 총재를 지지하며 '킹 메이커'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소 전 총리의 선택에 따라 결선 투표에서는 43명인 아소파 의원 상당수와 1차 투표에서 4∼5위를 기록한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을 지지했던 의원들이 대부분 다카이치 총재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재는 오는 15일께 실시될 국회 총리 지명선거를 거쳐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현재 일본 국회는 여소야대 구도이지만 야권이 분열해 제1당인 자민당 총재가 총리 지명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다카이치 "한국 기어올라" "다케시마의 날에 장관 보내야" 극우 발언
다카이치 총재는 혼슈 서부 나라현 출신으로 1993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나라현 지역구에 출마해 처음 당선됐고 지금은 10선 의원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 노선을 계승해 '여자 아베'라고도 불릴 정도로 강경 보수이자 '극우'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다카이치는 매년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으며 올해도 신사를 찾았다.
지난 2022년에는 도쿄에서 열린 극우 단체 심포지엄 강연에서 한국을 겨냥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어정쩡하게 하니 상대가 기어오른다"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시마네현이 개최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보내는 일본 정부 대표 인사의 격을 기존 차관급에서 장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만 이번 선서에서 극우 색채를 희석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달라진 점이다.
그는 이번 선거 기간에 북한, 중국, 러시아의 접근을 염두에 두고 "한국과 협력하며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다카이치 총재는 선거에서 승리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 "적시에 적절하게 판단할 것"이라는 불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는 전몰자 위령을 위한 중심적인 시설"이라며 "어떻게 위령을 할지, 어떻게 평화를 기원할지는 적시에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절대로 이것은 외교문제로 삼을 일이 아니다"라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국제환경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열심히 노력해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美언론 "아베의 귀환…한중과 마찰 가능성"
미국 언론들은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가 될 경우 한국·중국과의 마찰 가능성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다카이치 총재가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멘토를 뒀다"며 "그녀의 승리는 세계 주요 경제권에서의 보수 세력의 승리 흐름에 또 하나를 더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아시아 이웃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WSJ은 "그녀는 일본의 전몰자를 추모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자주 방문했다"고 상기하면서 "현직 일본 지도자들의 이런 참배는 중국과 한국 모두에 도발적 행위로 간주된다. 그곳들에서는 제국주의적 팽창 기간 일본이 저질렀던 잔혹 행위에 대한 기억이 깊게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NBC 방송은 다카이치 총재가 "자신의 영웅이 영국의 전 지도자 마거릿 대처라고 말하는 강경 보수주의자이며, 일본 최장수 총리였던 아베 전 총리의 동지였다"고 보도했다.
특히 다카이치 총재의 집권이 일본에서 "아베 시절로의 회귀"로 받아들여진다면서 "그녀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이웃들과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다카이치는 2022년 암살된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인 만큼 한중 등 주변국들과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며 다카이치가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 참배하는 등 '강경한 민족주의' 노선을 취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그는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심각한 변동성에 처한 시기 총리에 오른다"며 "다카이치의 민족주의 입장은 중국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최근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 노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부 "日 새 내각과 긴밀 소통·협력"
정부는 4일 집권 자민당 신임 총재에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선출된 것에 대해 "새 내각과 긴밀히 소통하며 한·일관계의 긍정적 흐름을 이어 나가기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10월 중순경 일본 국회의 총리지명선거를 거쳐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어 "한일 양국은 격변하는 지정학적 환경과 무역질서 속에서 유사한 입장을 가진 이웃이자 글로벌 협력 파트너"라며 "앞으로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양국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향후 한일 정상의 소통 계획에 대해 "한일 간 셔틀 외교가 완전히 복원된 만큼, 일본 국회의 총리 지명선거를 거쳐 새 내각이 출범하는 대로 신임 총리와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일측과 적절한 소통방식 및 시기 등을 협의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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