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50시간 만에 석방됐다. 법원은 절차를 택했고, 정치권은 결과를 해석했다. 사법 판단은 독립을 말했지만, 정치권은 프레임으로 답했다.
◇체포 50시간 만의 석방…“현 단계 체포 필요성 없다”
서울남부지법 김동현 부장판사는 4일 오후, 이 전 위원장이 청구한 체포적부심을 인용하며 “현 단계에서는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안에서 인신구금은 신중해야 한다”며 “조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고, 사실관계 다툼이 크지 않으며, 피의자가 성실히 출석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사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김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 위반의 공소시효가 임박한 만큼 신속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충분히 응하지 않은 점은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즉, 체포의 필요성은 약화됐으나 수사의 정당성은 인정된다는 절충적 판단이었다. 법원이 ‘체포의 적법성’을 부정하기보다 ‘현 단계에서의 구속 필요성’을 낮게 본 셈이다. 결정 직후 서울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이 전 위원장은 석방됐고, 경찰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수사 위축시켰다”…사법 신뢰 논란 재점화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결정”이라며 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공소시효를 앞두고 법적 절차에 따라 수사가 진행 중인데, 법원이 오히려 수사를 위축시켰다”며 “이러고도 사법권 독립을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번 결정을 ‘사법부의 정치적 판단’으로 규정했다. 이 전 위원장 사건은 단순한 수사 절차가 아니라 “법 위의 정치 특권을 인정하느냐”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흔드는 모순에 빠졌다”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의 공세는 ‘사법 신뢰 훼손’을 내세운 정치적 방어이자, 향후 유사 사건에 대한 여론전의 포석으로 해석된다. 법리 판단과 별개로, 정치적 해석의 영역이 법 위에 겹쳐진 셈이다.
◇국민의힘 “정권 보복 제동”…사법 복원 프레임 강조
국민의힘은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건 사법의 복원”이라며 맞섰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 정권의 오만과 폭주를 상징하는 장면이 이 전 위원장의 수갑이었다”며 “법원이 이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는 “정권의 뜻에 맞지 않는 인물을 상대로 한 정치 수사였다”며 “체포를 지휘한 책임자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정치보복 수사’ 프레임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 전 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장 재직 시절 정권과 긴장 관계에 있었던 점에서, 여권은 이번 사안을 ‘정권 보복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은 사법 판단을 넘어, 여야가 ‘정권 대 사법부’의 구도로 정치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장이 됐다.
◇사법은 절차, 정치는 프레임…엇갈린 해석의 이면
법원의 결정은 정치 논란 속에서도 법리와 절차, 인권 보장을 우선한 결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각각 ‘사법부의 정치 개입’(야당), ‘정치보복의 제동’(여당)으로 해석했다. 법원의 판단은 하나였지만, 정치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전혀 다른 서사가 만들어졌다.
정치적 사건이 사법 절차로 들어서는 순간 법의 의미는 둘로 갈라진다. 정치권은 법원의 결정을 각자의 입장에 맞게 포장하며, 법치를 정치적 무기로 전환하고 있다. 결국 사법부는 절차를 택했지만, 정치권은 결과를 이용했다. 그 간극이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균형점을 드러냈다.
◇“체포–석방” 50시간, 흔들리는 법과 정치의 경계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석방이 아니라, 정권·사법부·수사기관 사이의 긴장선이 드러난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법원은 체포 필요성을 낮게 보면서도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경찰은 결정을 존중했다. 하지만 여야는 각자의 정치적 언어로 사건을 재구성하며, 사법 절차마저 정치의 계산 속으로 흡수시켰다.
결국 이번 사건은 “법원의 독립성과 수사의 공정성 중 어느 쪽이 더 훼손됐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이 전 위원장의 50시간은 사법과 정치의 경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그리고 민주주의의 신뢰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법원은 절차를 택했지만, 정치권은 전략을 택했다. 그 사이 사법의 독립은 흔들리고, 민주주의의 균형추는 다시 정치의 프레임 위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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