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새벽 3시, 어둠을 뚫고 고추밭으로 향하는 두 사람. 82세 김덕매 씨와 74세 박복심 씨 부부의 하루는 그 시간부터 시작된다. 머리엔 헤드랜턴, 손엔 바구니. 말없이 고추를 따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고요하지만, 속엔 지난 세월이 묵직하게 쌓여 있다.
집에 돌아와선 고추 꼭지를 다듬고, 씻고, 말리고. 짬 날 틈도 없이 논밭을 오가며 배추를 심고, 풀을 베고, 농약을 친다. 이렇게나 많은 일을, 그들은 평생 함께해 왔다. 올해로 결혼 55년째. 누구 하나 먼저 말하지 않아도 척척 맞춰가는 손발, 그것이 부부라는 이름의 시간이다.
하지만 몸을 쓰는 일은 요즘 온전히 아내 복심 씨의 몫이다. 작년, 남편 덕매 씨가 뇌수술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부터다.
3년 전 트랙터에서 떨어져 고관절이 부러졌고, 다시 회복하나 싶던 찰나 찾아온 위기. 병원에 누운 남편은 가족도 못 알아봤다. 아내와 6남매는 돌아가며 병간호를 했고, 특히 장남 김경섭 씨(43)는 곁을 지키며 대소변까지 받아냈다. 그렇게 6개월, 덕매 씨는 다시 일어섰고, 복심 씨는 말한다.
“그냥 살아 있어줘서, 그걸로 됐지요.”
6남매의 다섯째이자 장남인 경섭 씨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모님 집으로 향한다. 일이 있어 못 오면 "천재지변이 났나?" 할 정도다. 둘째 미애 씨(50)는 틈날 때마다 장을 봐 부모님 냉장고를 채우고, 반찬까지 싸 들고 간다. 셋째 효정 씨(47)는 사진을 찍어 수십 개의 앨범을 만들었다. 그 안엔 매해 늙어가는 부모님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고생만 하신 부모님, 자식들은 그 등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지금도 짬만 나면 고향으로 달려온다. 감나무 아래 풀을 베고, 옥수수며 감자며 철마다 심고 거두는 부모님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자식들 먹을 걸 생각하고, 자식들은 그 은혜를 가슴에 품는다.
아버지가 직접 돌담을 쌓은지 어느새 30년 세월이 흘렀다. 그 마지막 돌 하나가 얹히는 날, 온 가족이 고향집으로 모였다. 사위, 며느리, 손주까지 총출동. 넷째 사위 ‘허 서방’은 마이크까지 준비해 가족 레크리에이션을 열었다. 누가 보면 예능 촬영 현장이다.
손주들은 돌담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마음을 적는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기념사진도 찍고, 손녀의 판소리 한 소절에 덕매 씨도 흥이 돋았는지, 따라 한 곡조 뽑는다.
돌담은 자식들에게 그건, 부모가 남긴 삶의 이정표이자 기억의 기둥. 힘들고 외로운 순간마다 이 담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선다. 그렇게, 부모의 사랑은 돌처럼 묵직하게, 그 자리에 남아 있다.
KBS1 '인간극장'은 6일(월) ~ 10일(금) 오전 7시 50분 방송된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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