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가 세계 무역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 부동산 편중 자산구조, 가계부채 누증이 맞물리며 경제의 기초 체력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정부는 ‘OECD 평균보다 낮다’는 국가부채 비율만을 근거로 재정확대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이는 위험한 착시다. 개인과 기업까지 포함한 총부채 수준은 이미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유사한 수준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부채 관리에 실패할 경우, 재정적자 리스크가 외환시장 불안으로 전이돼 제2의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가 재정적자 문제로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 사례는 한국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국가부채 관리 원칙을 제도화하고 국회의 견제 장치를 강화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 역시 신용등급 하락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 <투데이신문은> 총 3편에 걸처 한국 국가부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조명한다. 투데이신문은>
【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면서 국채 발행도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경기 침체와 세수 감소 속에 신산업 투자와 민생 지원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국가부채와 금융시장 불안이라는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8월 수정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은 0.8%에 그쳐 ‘60년대 이후 최저 수준’에 해당한다. 이는 지난해 전망치인 2.0%에서 크게 하락한 수치로,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복합 침체 국면임을 보여준다.
민간소비 증가율도 0.9%에 그쳤고, 특히 건설투자는 -6.1%로 심각하게 위축됐다. 설비투자 역시 내림세를 보이며 1.2% 증가에 그쳤다. 수출은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보호무역 장벽 등으로 4.0% 감소가 예상되고, 무역수지 흑자도 276억 달러로 2024년 대비 크게 줄었다.
소비자 심리지수도 올해 들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9월 기준 소비자 심리지수(CCSI)는 110.1로 전달 111.4보다 소폭 하락하며, 경제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일부 반영됐다. 특히, 국민 과반 이상(53%)은 올해 소비지출을 줄일 계획이라 답했고,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소비 축소 의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경제 침체가 단기 충격에 그치지 않고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경기 침체 원인은 복합적이다. 지난해 12월 3일 선포된 ‘12.3 비상계엄’은 금융시장과 소비자 신뢰를 크게 위축시켜 원·달러 환율 상승, 외환보유액 방어 부담을 촉발하는 등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줬다. 여기에 미·중 무역 갈등과 관세 인상, 보호무역주의 심화 등이 수출 둔화로 이어지면서 한국 제조업과 주요 수출산업의 성장정체를 가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전 정부의 긴축 재정과 감세 정책으로 인한 내수가 약화가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경기 회복을 제약했다.
확장재정, 경기 회복 마중물 될까
연세대 경제학부 김정식 명예교수는 “투자와 소비가 줄어들며 내수가 악화됐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도 경제의 불안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며 “재정으로 내수를 부양해 성장률을 높이면 세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내수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2026년도 예산안을 의결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뿌릴 씨앗이 부족하다고 밭을 묶혀 놓는 그런 우를 범할 수는 없다”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이는 국가 재정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국채 발행을 통한 확장 재정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 개선이라고 하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내년도 예산안은 이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서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정부는 2026년 예산안을 약 728조원으로 편성, 올해 본예산보다 55조원 가까이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확장 재정 기조를 공식화했다.
이번 예산안은 AI·R&D 투자, 미래 신산업 육성, 중소기업 지원으로 집중되며, 특히 AI 예산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확대된 10조1000억원에 달한다. 또한 지역화폐와 농어민 기본소득 시범사업 등 민생 지원에도 상당한 규모가 배정됐다.
하지만 국세수입 증가가 제한되면서 총지출 대비 적자 규모는 53조8000억원에 이르고, 국가 채무는 1300조원에서 1400조원대로 빠르게 불어날 전망이다.
국채 발행이 크게 늘어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기 둔화와 감세로 인해 세수 결손과 감소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민생 지원과 신산업 투자비용이 늘면서 연간 재정 적자가 조 단위로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적자 보전과 기존 국채 만기 상환 등 자금 조달을 위해 내년 역대 최대 규모인 230조원 이상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명지대 경제학과 우석진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3년간 과세기반을 줄여놓은 부분이 있어 조세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세입을 크게 늘리기 어려워 차액은 국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또한, 대외 변수인 3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조성 등 특수목적 채권 발행이 가세하면서 채권시장 부담과 금리 상승 우려가 커졌다.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 부담도 증가해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인한 기업 자금 조달 여건도 악화될 전망이다. 국채 발행이 대규모로 늘어나면 채권시장에서 국채(정부채권) 공급이 급격히 확대돼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민간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의 금리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