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움직이는 연출의 기술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현장을 움직이는 연출의 기술

이슈메이커 2025-10-04 15:16:59 신고

3줄요약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현장을 움직이는 연출의 기술

최윤정 라이프기획사 대표ⓒ 라이프기획사
최윤정 라이프기획사 대표
ⓒ 라이프기획사

 


 - 큐시트·체크리스트로 재현 가능한 품질 유지
 - 지시보다 참여, 몸이 먼저 가는 리더십

누군가는 예산을 말하고, 누군가는 사람을 먼저 세운다. 형식이 앞서던 행사 현장의 관행에서 벗어나, 무대 중심을 현장 실행 중심으로, 탑다운을 바텀업으로 돌리며 공간과 시간의 온도를 조절하려는 시도가 지역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어린이집의 작은 파티부터 공공 행사의 메인 무대까지, 생활과 정책을 잇는 정성스러운 연출이 현장을 바꾸는 순간들을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는 전문가가 등장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MICE 산업의 변화와 흐름을 확인하기 위해 이슈메이커는 최윤정 라이프기획사 대표를 찾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녀의 선택과 말 속에서 답을 들어보았다.

최윤정 대표는 비어 있던 공간에 사람의 시선과 동선을 입혀 현장을 다시 찾고 싶은 기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 라이프기획사
최윤정 대표는 비어 있던 공간에 사람의 시선과 동선을 입혀 현장을 다시 찾고 싶은 기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 라이프기획사

 

경력 단절을 넘어 실행으로
2018년 봄, 경력 단절의 벽 앞에서 최윤정 대표는 스스로를 믿었다.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제안으로 서울시·동작구 상향적·협력적 일자리 사업 총괄 매니저를 맡았지만 전공은 서양화였고, 경영·회계·노무는 낯설었다. 그는 ‘전문가를 붙여 달라’고 요청하고, 저녁 6시 이후를 공부 시간으로 바꾸어 운영과 제도를 빠르게 익혔다.


  첫 출근 날, 40·50·60대 경력 단절 여성 18명이 오전·오후 조로 배치된 채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거리를 만들어 드려야 했고, 책임감은 두려움보다 빨랐다.


  해답은 생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직접 PT를 제안할 수 있는 ‘5분 PT’를 설계했다. 그리고 성과는 분명했다. 시작 석 달 만에 월 단위 결제 1천만 원을 만들어 지속 가능성을 입증했다. 무대보다 현장을 먼저 세우는 태도와, 배움으로 공백을 메우는 습관이 이때 굳어졌다. 이후 그녀는 사람과 일을 다시 잇는 기획을 자신의 방식으로 밀어붙였다.

ⓒ 라이프기획사
ⓒ 라이프기획사

 

몸이 먼저 가는 리더십
당차게 출사표를 던진 최윤정 대표는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곧 현장의 멈춤을 맞이했다. 코로나로 대면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무대가 비워졌고, 환경은 급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어려워지자 그녀는 빈 사무실에 홀로 나와 다음 수를 찾았다. 예정됐던 서울시 행사까지 취소되며 매출선이 끊겼지만, 영상감독인 배우자가 ‘행사를 온라인으로 해보자, 내가 돕겠다’라고 제안했고, 이 길이 유일한 돌파구가 됐다. 현장은 화면 위로 옮겨졌고, 운영의 기준은 송출과 기록의 체계로 다시 짜였다. 


  그 사이 재무와 임대, 영업도 함께 버텼다. 2019년 7월 사업자 등록 직후부터 쌓아 둔 잉여금을 비상자금으로 돌렸고, 국유재산 건물에 둔 사무실은 임대료 감면 대상이 되어 고정비를 낮출 수 있었다. 관계 부서와 시청에도 “행사가 있으면 연락 달라”는 요청을 멈추지 않았고, 노력과 정성이 쌓여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결국 현장을 살렸다.


  이 과정에서 최 대표가 현장에서 배운 원칙의 첫 번째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리더십’이었다. 그녀는 지시보다 참여를 기준으로 삼았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빗자루를 들고, 가장 먼저 출근해 마지막에 불을 끄고 나갔다. 작은 장면들이 쌓여 기준이 되었고, 기준은 곧 신뢰가 되었다. “제가 먼저 움직여야 팀이 따라옵니다. 현장은 말보다 몸이 빠릅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두 번째 원칙은 ‘배워서 구조로 만든다’였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에게 경영·회계·노무는 낯선 영역이었지만, 퇴근 이후를 공부 시간으로 바꾸고 컨설팅을 요청해 제도와 운영을 익혔다. 그 결과 2019년 2월 법인 설립, 7월 사업자 등록, 10월 예비 사회적기업 지정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졌고, 이후에는 인증 사회적기업 전환, 여성기업 확인, 직접생산확인증명 등 공공 조달과 입찰에 필요한 인증을 단계적으로 취득해 지속성을 제도 안에 고정했다. ‘모르면 배우고, 배운 것은 절차로 만든다’라는 평상시 그녀의 신념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세 번째 원칙은 투명한 운영과 역할의 분리였다. 조합원과 직원의 테이블을 구분하고, 회의·보고·정산의 순서를 문서로 남겨 누구나 같은 장면을 재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녀는 “현장은 한 번의 ‘우연한 성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같은 결과를 다시 만들 수 있어야 진짜 시스템입니다”라고 강조하며 “역할을 나누되 책임은 나누지 않는 방식으로 팀의 체력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름도 기준에 맞춘다’라는 결정을 했다. 기업의 대외 표기를 ‘라이프마을기획사’에서 ‘라이프기획사’로 통일해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 맡는 일의 범위와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이름의 정리는 단어 교체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에 대한 선언이 되었다.

ⓒ 라이프기획사
ⓒ 라이프기획사

 

기록과 송출의 표준화, MICE 산업으로의 확장
지금의 라이프기획사는 제안-설계-세팅-운영-정산이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원스톱 구조를 구축했다. 현장은 무대보다 동선이 먼저이고, 장식보다 메시지가 먼저라는 원칙 아래, 사전 미팅에서 콘셉트를 확정하면 면밀한 리허설과 체크리스트로 변수의 여지를 줄인다. 일정 중 하루를 ‘기록의 날’로 묶어 촬영·편집용 소스를 확보하고, 행사 종료와 동시에 결과 보고서와 정산 데이터가 넘어간다. 같은 결과를 다시 만들 수 있게끔 절차를 문서로 고정해 온 시간이 지금의 체력을 만들었다.


  시스템이 구축되자 업의 축은 마을 단위 생활 행사에서 공공·기업 MICE로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근래에는 더 규모 있는 MICE를 하고 있고, 경쟁 입찰을 연달아 치르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이어간 그녀는 “실제로 지난해 가을에는 오전·오후로 나뉜 두 건의 입찰을 연속 통과한 뒤, 현장에서의 만족도를 근거로 수의 계약까지 연결했어요. 하루 매출 1억에 근접한 날이 있었고, 특정 주간에는 2억에 가까운 성과를 기록했을 정도였죠”라고 힘주어 전했다. 


  운영의 핵심은 현장형 연출이다. 비어 있는 로비와 전시실에는 드롭 배너·현수막·포토월 같은 ‘보기 쉬운 표식’을 서서히 키워 가시성을 확보하고, 입구·무대·동선의 높낮이와 각도를 조정해 체류 시간을 늘린다. 소품 배치와 사운드 체크는 의전·사회·송출 스태프의 큐시트와 엮이고, 기록팀은 사진·영상 컷리스트로 사후 홍보까지 견인한다. 작은 장면을 모아 하나의 기억을 만드는 방식은 생활 행사에서도, 정책 행사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팀은 조합원과 직원이 겹치지 않게 움직인다. 역할은 나누되 책임은 나누지 않는 원칙에 따라, 이사회·보고·정산의 순서를 정례화해 누가 들어와도 동일한 품질을 낼 수 있게 했다. 그녀는 “현장은 한 번의 우연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지자체마다 다른 성향과 기준을 존중하면서도, 라이프기획사가 만든 기본형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조직의 체력이며, 내일을 위한 약속이죠”라고 전했다.

라이프기획사는 앞으로 공공은 물론 대학과 기업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정례화하고, 온·오프라인 송출과 기록 체계를 표준 모델로 확장해나갈 것이다.ⓒ 라이프기획사
라이프기획사는 앞으로 공공은 물론 대학과 기업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정례화하고, 온·오프라인 송출과 기록 체계를 표준 모델로 확장해나갈 것이다.
ⓒ 라이프기획사

 

원칙이 장면이 되다
앞서 운영의 원칙과 루틴을 짚었다면, 이제 그 기준이 현장에서 어떻게 결과로 변하는지를 차분히 기자에게 설명했다. 이에 기자 본인은 같은 방식이 장소와 맥락을 바꿔도 일관된 품질로 이어지는지, 실제 사례로 확인해 보았다.


  앞선 대화에서 정리한 운영 원칙을 토대로, 최윤정 대표는 기자에게 현장 적용 과정을 소개했다. 영등포구청 아트홀 전시실에서는 비어 있던 로비의 축을 드롭 배너로 세우고, LED와 현수막 확장으로 시야를 넓혔다. 조도와 각도를 정리하자 공간은 통과 지점에서 머무는 장소로 전환되었고, 행사 시작 전부터 다른 행사의 진행 요청이 이어졌다고 한다. 


  사당3동 신축청사 개청식에서는 접근성을 최우선에 두었다. 정문·로비·본무대 동선을 아크릴 안내판으로 단순화하고, 폐기 부담을 줄이는 허니콤 보드 구조물로 상징물을 제작했다. 테이프 커팅과 포토월, 다과 동선을 끊김이 없이 엮자, 주민 행사는 누구에게나 열린 자리라는 감각을 되찾았다. 


  정책 포럼에서는 무대 조립 이후 송출·음향·기록을 하나의 큐시트로 묶어 지연을 최소화했다. 현장의 메시지가 유튜브 생중계로 동시에 전달되면서 오프라인 청중과 온라인 시청자가 같은 타이밍을 공유했다. 그녀는 “현장의 메시지는 더 멀리 가야 합니다. 그래서 송출은 의전과 같은 비중으로 다룹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비어 있던 공간에 사람의 시선과 동선을 입히자, 현장은 보고서의 항목이 아니라 다시 찾고 싶은 기억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 기억은 라이프기획사가 업계에서 자리를 넓혀 가는 데 작지 않은 동력으로 작용했다.

라이프기획사는 사회적기업 인증, 여성기업 확인, 직접생산확인증명 등 공공 조달과 입찰에 필요한 인증을 단계적으로 취득해 지속성을 제도 안에 고정했다.ⓒ 라이프기획사
라이프기획사는 사회적기업 인증, 여성기업 확인, 직접생산확인증명 등 공공 조달과 입찰에 필요한 인증을 단계적으로 취득해 지속성을 제도 안에 고정했다.
ⓒ 라이프기획사

 

현장 설계자로서의 약속
라이프기획사가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은 분명하다. ‘우리는 장식물을 납품하는 팀이 아니라 생활과 정책을 잇는 현장 설계자’라는 기준이다. 이 정체성은 제도와 지표로도 확인된다. 예비에서 인증 사회적기업으로의 전환, 여성기업 확인, 직접생산확인증명 취득처럼 업에 필요한 인증을 순차적으로 확보했고, 경영 성과 지표인 SVI(Social Value Index : 사회적 가치 지수)에서도 연속으로 우수 등급을 기록했다. 내부에서는 조합원·직원 테이블 분리와 이사회·보고·정산의 정례화를 통해 결과를 재현 가능한 품질로 관리한다. 목표는 외형의 확장이 아니라, 공공·대학·기업 전반에서 같은 기준을 반복 가능하게 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사람을 남기는 방식도 꾸준히 이어 간다. 자체적으로 카페를 운영해 자립준비청년과 시니어의 실습·자격·경력을 연결하고, 행사 현장에서는 안전 교육과 기록 훈련을 병행해 체감 가능한 경험을 쌓게 했다. 그녀는 “현장은 결국 사람으로 완성됩니다. 역할을 맡긴 이상, 책임과 성장을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라며 “일과 배움이 한 흐름으로 묶일 때 현장은 비로소 일자리의 얼굴을 갖게 되기 때문이죠”라고 전했다.


  라이프기획사의 앞으로의 목표는 공공은 물론 대학과 기업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정례화하고, 온·오프라인 송출과 기록 체계를 표준 모델로 확장하는 일이다. 지역별 성향을 존중하되, 라이프기획사가 축적한 체크리스트·큐시트·보고 포맷을 통해 품질의 하한선을 확실히 지키려 한다. 그녀는 마지막에 짧게 덧붙였다. 


  “우리는 다음 현장에서 준비와 세팅, 운영으로 우리의 약속을 증명하겠습니다”

 

현장은 표식보다 사람으로 완성된다. 2018년 봄의 작은 실험 이후, 최윤정 대표는 먼저 움직이는 기준과 재현 가능한 절차로 생활과 정책을 잇는 무대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때로는 건강 악화로 인한 혼란도 있었지만, 기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의 기록은 성과의 나열이 아니라 태도의 증거다. 그녀는 다음 현장에서도 이 약속을 다시 증명할 것이다.

Copyright ⓒ 이슈메이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