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원주 수습기자] 서울에 사는 취업준비생 류효림(26)씨는 올 추석에 고향인 대구에 가지 못할 뻔했다. 매년 성공하던 KTX 예매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취업 전형을 치르던 류씨의 부모님이 대신 예매에 나섰지만, 창이 열리자마자 수십만 번 대 대기 순서를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화면이 초기화됐다고 했다. 그는 결국 지난달 21일 취소표를 구하기 위해 창을 ‘무한 새로고침’한 끝에 추석 당일에나 귀성하는 표를 구할 수 있다.
귀성·귀경길 KTX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많은 시민이 한 번에 몰리는 탓도 있지만, 예매해 놓고 결국 타지 않는 ‘노쇼’ 기차표도 매년 수십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궁여지책으로 거주지 근처가 아닌 먼 곳에 가서 기차를 타는 표를 예매하거나, 아예 고향에 가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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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앞두고 이데일리가 만난 시민들은 기차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류씨뿐 아니라 경남 창원특례시 마산으로 귀성하는 직장인 임모(34)씨도 상황은 같았다. 예매 당일 아침부터 표를 끊기 위해 기다린 임씨는 ‘111만명 대기’ 팝업창만 보다 결국 예매에 실패했다. 임씨는 “수능이 어려운 것보다 귀성길 표 끊는 게 더 힘들다”며 “매년 반복되니 더 힘들다”고 말했다.
기차표 대란에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차편을 예매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직장인 김예슬(26)씨는 “겨우 표를 구했는데 집 근처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다”며 “전날에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노숙을 해야 할 판”이라고 털어놨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 기간 KTX 예매에 실패한 적 없던 김씨는 이번 추석 예매 때는 달랐다고 했다. 그는 “2시간을 기다렸는데도 대기인원이 수십만 명이었다”며 “출근 후 회사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휴대전화 예매 화면을 그대로 켜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예매한 표는 거주지 주변 수원역이 아닌 서울역에서 새벽 출발하는 기차였다.
표를 끊지 못해 귀성을 포기한 이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원영(27)씨는 “이번에 본가 부산에 내려가는 KTX 차편 예매 실패했다 ”며 “수도권 수영장에 놀러가고 독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시민들이 기차표 전쟁을 벌이는 사이 ‘노쇼’ 승차권만 명절마다 수십 장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철도공사와 SR이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명절(설·추석) 연휴 기간 고속철도(KTX·SRT) 미판매 승차권은 △2022년 22만7000매 △2023년 49만 매 △ 2024년 47만6000매로 나타났다. 올해 설 명절 미판매 승차권은 KTX 31만7000매, SRT 2만3000매로 합계 약 34만매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 같은 기차표 예매 대란과 관련 대해 엄정한 대응을 벌이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9월 25일 업무방해 혐의로 피의자 A씨 등 6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송치된 이들은 2025년 설 명절 기간에 접속·예매를 자동으로 반복하는 악성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SRT의 승차권 예약 발매 시스템의 정상 운영을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각각 약 171만 건에서 약 3100만 건까지 불법 예매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은 지난 9월 4일 추석 명절을 맞아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기차표를 대량 예매하는 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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